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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딛고 28년만 부활한 카자흐 헌재…한국 헌재 벤치마킹 추진도

중앙일보

입력

지난 17일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외신 기자단을 만나 카자흐 헌재의 1년에 대해 설명했다. 왼쪽부터 누르무하노프 바큿 재판관, 엘비라 아지모바 헌법재판소장, 포도프리고라 로만 재판관. 사진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지난 17일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외신 기자단을 만나 카자흐 헌재의 1년에 대해 설명했다. 왼쪽부터 누르무하노프 바큿 재판관, 엘비라 아지모바 헌법재판소장, 포도프리고라 로만 재판관. 사진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지난 17일 오후 7시쯤(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 있는 헌법재판소 심판정. 마이크를 잡은 엘비라 아지모바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장(카자흐 헌재소장)은 “법은 처벌 도구가 아니라 예방 도구”라며 “사법 신뢰를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외신기자단과의 만남 자리였다. 내년 1월 출범 1주년을 맞는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던 아지모바 소장은 “카자흐 국민의 존엄과 자유, 정의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말을 끝맺었다.

28년 만에 부활한 카자흐 헌재

지난 17일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선 카자흐 헌재 재판관 3명과 외신 기자단과의 만남이 진행됐다. 심석용 기자

지난 17일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선 카자흐 헌재 재판관 3명과 외신 기자단과의 만남이 진행됐다. 심석용 기자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카자흐 헌재)는 1992년 7월 설립됐다. 건국 당시 제정된 ‘카자흐스탄 공화국 국가독립에 관한 헌법적 법률’에 근거를 뒀다. 그러나 1995년 8월 헌법재판소 폐지 및 헌법위원회 설립 규정을 명시한 새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헌법위원회로 대체됐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당시 카자흐 대통령의 뜻이었다. 헌법위원회는 국민의 헌법소원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등 폐쇄적 형태를 띠었다.

그러다 연료값 급등을 계기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 이후 지난해 11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재설치 등을 포함한 법안에 서명하면서 올해 초 카자흐 헌재는 28년 만에 부활했다. 카자흐 법무부 차관을 지낸 엘비라 아지모바가 소장을 맡았다. 인권위원회 위원 시절 취약계층에 벌금 대신 경고장을 주고 반정부 시위로 형사 기소된 초범에 가벼운 처벌을 내리자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로부터 11개월 뒤 카자흐 헌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카자흐 헌재에 따르면 올해(1~11월) 4862건의 헌법소원이 청구됐다. 시민 청구(4852건) 비중이 가장 높았고 대통령(3건), 검찰총장(3건) 등이 뒤를 이었다. 헌재 관할 사안은 1288건으로 집계됐다. 법률 5건에 대해선 위헌결정도 내려졌다. 아지모바 소장은 “500건 이상이 헌재 소관이 아니라 기각됐지만 그만큼 국민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해외 헌재 참고, 개선해야”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국 헌법재판소 AACC 연구사무국 직원들은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사건분석, 기록부서 등과 실무회의를 했다. 사진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국 헌법재판소 AACC 연구사무국 직원들은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사건분석, 기록부서 등과 실무회의를 했다. 사진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

한편에선 과도기 단계인 만큼 해외 헌재의 운영체제 등을 참고해 미비한 부분을 개선하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한다. 특히 “아시아헌재연합(AACC) 연구사무국인 한국을 벤치마킹 해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고 카자흐 헌재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에선 2015년 8월 김이수 헌재 재판관이, 지난 9월엔 정정미 헌재 재판관이 카자흐 헌재를 방문했다.

카자흐 헌재도 2018년부터 3차례 한국 헌재를 찾았다. 지난달 31일엔 한국 헌재 관계자들이 4일간 카자흐 헌재를 찾아 사건분석·기록부서 등 4개 부서와 실무회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카자흐 측은 한국 헌재의 심리절차, 심리 사안, 연구사무국이 진행하는 헌법재판 관련 연구조사 등에 대해 질문했다고 한다. 한국 헌재 관계자는 “헌재의 중요 판결은 영문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헌법소원 등에 대한 심도 있는 판단이 있어 카자흐 등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며 “아직 공식 자문은 없었지만, 요청이 오면 가능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8월 김이수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카자흐스탄 헌법제정 20주년 기념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김 재판관은 기념접시를 선물로 건넸다. 이 기념접시는 카자흐 헌재에 전시돼있다. 심석용 기자

2015년 8월 김이수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카자흐스탄 헌법제정 20주년 기념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김 재판관은 기념접시를 선물로 건넸다. 이 기념접시는 카자흐 헌재에 전시돼있다. 심석용 기자

이지은 한국외대 중앙아시아학과 교수는 “카자흐스탄은 그간 행정권력이 커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최근엔 헌재가 부활하는 등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헌법 개정 등으로 권위적 색채를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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