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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스라이팅 당하는 중?…나르시시스트, 이렇게 조종한다 [더, 마음]

중앙일보

입력

‘더, 마음’ 섹션에서 여러분의 단단한 마음을 응원하며 매주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이번 주는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토네이도)입니다. 책 부제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삶의 시작’인데요. 어떤 내용인지 살펴볼게요.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는 어떤 책?

저자 원은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2018년 GSK 젊은의학자상을 수상하고, 2022년 엑스퍼트스케이프 우울장애 분야에서 세계적 전문가로 선정됐는데요. 2019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나르시시스트를 전방위적으로 조명하고 있죠.

저자는 다양한 증상의 내담자들과 면담하며, 갈등의 원인은 상당 부분 내담자가 아닌 상대방에 있다는 걸 발견해요. 그 상대방이 자기애성 성격을 강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저자도 나르시시스트를 만나 피폐해진 적이 있는데요. 나르시시스트의 실상을 직시하고, 관련 연구를 하면서 나르시시스트가 아동학대, 극심한 고부 갈등, 의처증과 의부증, 데이트 폭력, 직장 내 괴롭힘, 갑질, 성희롱, 악플 같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저자는 ‘의사로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나르시시스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현재의 이 고통이 자신의 잘못이나 나약함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하는데요. 다행히 상담과 치료를 받은 내담자들은 본질을 인지하고, 안도감을 경험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변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지 말라’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실체, 즉 나르시시스트를 설명해줍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누구?  

나르시시스트는 특정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점차 성숙해진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p. 36~37.  

학계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성격 특성을 형성하며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상대에게 정서적, 물리적 피해를 주는 것’을 자기애성 성격이라고 하는데요. ‘특정 자기애성 성격 특성들의 조합을 지닌 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강도로든 고통을 초래하는 사람들을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불안정한 정체성과 자존감’을 갖고 있죠.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요. 보통 ‘죄책감’을 잘 느끼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죠. 자신이 느끼는 서글픔, 섭섭함을 감내하지 못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상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고요. 폭력적인 언행이나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엄한 트집을 계속해서 잡으면서 주변 분위기를 망치기도 해요. 강렬한 질투심을 느끼며 상대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요. 자신이 필요한 무엇을 얻기 위해서 피상적인 관계 맺기에 전념하기도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는 한 번에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특히 관계 초반에 자신을 잘 포장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시간이 지나도 나르시시스트의 실체를 알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수십 년이 지나서야 가족 구성원이 병적인 수준의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하지만 나 자신을 지키려면 상대의 행동 패턴을 보고, 상대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 책은 상대가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닌지 알려면 먼저 ‘조종’이라는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해요. 나르시시스트는 인간관계 안에서 갖춰야 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종이란 수단을 사용하는데요. 이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방식으로 자신이 쉽게 조종할 사람들을 알아보고 다가간다고 합니다. 나르시시스트가 어떤 방법으로 상대를 조종하는지 살펴볼게요.

1.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은 ‘상대가 인지하는 상황, 느끼는 감정, 지닌 기억들이 마치 사실이 아닌 것처럼,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서, 상대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도록 조종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가스라이팅은 부모와 자식, 연인, 부부, 친구, 동료 관계에서 나타나요.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면서, 불안감, 무력감을 보이는데요. 나르시시스트에게 이런 감정을 나타내면 “당신이 과민 반응을 보인다”고 말해요. 상대가 말한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정하기도 하죠. 대화를 원래 주제와는 다른 주제로 이끌어가면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기도 하고요. 저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믿어온 신념들이 상충되어 혼란스럽고, 혼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머뭇거려진다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2. 미끼  

낚시할 때 물고기를 잡기 위해 미끼를 사용하는데요. 나르시시스트는 인간관계를 이어가면서 상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미끼를 사용합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정체를 파악한 상대가 거리 두기를 하려고 하면 나르시시스트는 더 강력한 미끼를 던지곤 하죠. 상대방의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데요. 상대가 화를 내고, 극적인 감정 반응을 하게끔 유도한다고 해요. 저자는 ‘이런 극적인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관계 안에 재차 끌려가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상대를 우회적으로 비꼬거나 상대의 약점이나 깊은 상처를 자극하는 행위, 상대를 감정적으로 동요시키는 말과 행동 모두 미끼인데요. 나르시시스트에게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나르시시스트가 던지는 미끼를 물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가 미끼를 던지더라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미끼를 물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법입니다.

3. 투명인간

A가 B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주변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B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나 보네’라고 여깁니다. B조차도 ‘내가 잘못을 크게 저질렀나?’ 생각하죠. 이런 이유로 나르시시스트가 투명인간 취급하기 전략을 사용하는 겁니다. 저자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자신의 과대성과 우월함에 가려져 있는 결함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 상태를 잘 인지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하고요. 때로는 불편한 감정을 이런 방식으로 표출합니다. ‘나를 기분 나쁘게 했으니까 너랑은 말 안 해’ 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들죠. 상대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자신에게 대화를 시도하게끔 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나르시시스트는 가학적인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만약 상대가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면 ‘나는 그런 행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면 됩니다.

4. 러브바밍

나르시시스트는 관계 초반에 자신은 좋은 사람이고, 이 관계는 좋은 관계라고 상대가 믿도록 조종하는데, 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러브바밍(love bombing)이다. 러브바밍은 과도한 애정 공세로 관계 초반에 상대를 끌어당기는 유혹 방법이다. p. 191

나르시시스트는 지지자를 얻기 위해서 애정 공세를 과하게 하곤 합니다. 관계 초반에는 엄청난 관심을 보이면서 칭찬을 쏟아내기도 해요. 만남의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도 하고요. 나르시시스트는 관계 초반에만 이러는 것이 아니고요. 관계 중간중간에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상대가 떠나려고 하면 러브바밍을 하면서 잡아두죠. 이런 관계는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 동료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지나치게 상대를 챙겨주면서 수십년간 우정을 쌓아온 것처럼 행동하죠. 저자는 이런 미끼를 물지 않으려면 ‘상대를 서서히 알아가며 진정성 있는 교류가 가능한 사람인지’ 알아봐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차근차근’ 쌓아가는 관계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니까요.

5. 더 무서운 조력자들  

나르시시스트 곁에는 조력자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 사람의 잘못을 묵인해주는 사람들을 가리켜 나르시시스트의 조력자, 즉 인에이블러(enabler)라고 칭합니다. 정서적 학대를 받은 사람 중에는 나르시시스트 당사자뿐 아니라 나르시시스트 조력자에게 조종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례로 한 자녀가 나르시시스트인 엄마에게 벗어나려고 하면 아빠나 이모가 자녀를 만류합니다. 자녀는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자책하죠. 내가 만약 나르시시스트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상대에게 고충을 토로했는데 이런 말이 돌아왔다면 상대가 조력자일 수 있습니다. “00는 본인 생각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얘기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래. 본심이 나쁜 건 아니야.” 조력자들은 나르시시스트와 관계를 맺으며 이득을 얻기도 하고, 나르시시스트 실체에 대해 모르기도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무시하기도 하는데요. 이런 조력자들의 조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 조언 역시 가스라이팅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법

1. 나의 육감은 내 생각보다 정확함을 믿어라.
2.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를 파악한다.
3.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알아차린다.
4.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탓하게 하는 말들을 경계한다.
5. 관계 초반에 나를 유혹하는 러브바밍을 조심하라.
6.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하나의 돌이 되자.
7. 나를 자극하는 부정적인 미끼를 주의하라.
8. 물리적 거리 두기와 함께 정신적 거리 두기를 한다.
9. 그 사람 앞에서는 나의 깊은 마음을 숨긴다.
10. 상처를 그만 곱씹고 잘못된 연결고리를 자른다.

더, 마음 읽기 가이드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는데요. 파트 1은 나르시시스트의 유형, 구체적인 특징, 나르시시스트가 된 원인 등을 다루고 있다면 파트 2는 나르시시스트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풍성한 사례와 저자의 전문영역인 정신건강학적 이론을 통해서 나르시시스트가 내포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짚어내는데요. 인생의 주도권을 갖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꾸리는 것이 핵심이라는 조언이 인상적입니다.

책을 읽으며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는데요. 지금 당장 관계 때문에 힘들다면, 이 책이 실질적인 조언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내 안에 있는 나르시시스트 적 특성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에게는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이 내면에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저자의 말대로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나르시시스트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함과 동시에,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건강하지 않은 심리들을 자각하고 변화를 시도’하면 좋겠습니다.

이혜민 객원기자 lhm5866@hanmail.net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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