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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무너진 딸의 자해 시도…엄마는 공부를 시작했다 [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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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음’ 섹션에서 여러분의 단단한 마음을 응원하며 매주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이번 주는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창비)입니다. 책 부제는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사는 법’인데요. 어떤 책인지 살펴볼게요.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어떤 책?

결국 부모의 우직한 소명의식이 사사로운 우려를 이겼다. (중략) 정신건강 의학 전문가가 본다면 한없이 모자란 이야기를 용기 내 하게 된 이유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바꾸는 데 작은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p. 290.

저자 김현아는 현재 한림대 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일하는 의사입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여러 상도 받았고요. 저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라는 책도 썼습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성실하게 쌓고 있던 저자는 7년 전, 둘째 딸이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으면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자해를 시도한 딸은 응급실을 찾았는데요. 그 뒤로 병원에서 병명을 진단받은 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이어갔습니다. 입원을 반복하던 딸이 어느 날 흐느꼈다고 해요. “나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어. 젊은 시절의 삶이 다 없어진 것 같아.” 병의 경과를 보면 이제 겨우 초기를 지났을 뿐이라는데요. 저자는 딸을 지켜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의사인 저자도 정신질환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아픔을 지켜보며 한탄만 하지 않고, 전문서적과 논문을 읽으며 질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아이에게 나타나는 여러 증상을 보며 좌절합니다. 급기야 책을 쓰기로 해요.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없애기 위해서 말이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와 용기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이 책은 아이의 아픔을 계기로 정신질환을 전방위적으로 파고든 의사 엄마의 처절한 연구 기록이자 투병 일기입니다. 마음의 병을 갖고 있는 사람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기록이죠. 실제로 문화인류학자인 로이 리처드 그린커는 『정상은 없다』(메멘토)라는 책에서 ‘우리는 어느 누구도 정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어요. ‘정상이란 오랫동안 사회가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부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쓴 개념이며 유해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육체질환이나 정신질환을 마주합니다. 이 책은 그런 모두를 위한 가이드북입니다.

저자는 정신질환을 이해하기 위해서 본인이 했던 다양한 노력을 책에 기록했습니다. 같은 경험을 가진 부모를 위해 다양한 조언을 하는데요. 같이 살펴볼까요.

1. 공부와 이해가 우선이다.

아이의 병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긴 후 나의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아이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산산조각나는 이유도 알 수 있었고 내가 조금만 짜증을 내도 아이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p.200

가족이 정신 질환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바로 알아챌 수 있을까요? 저자는 쉽지 않다고 말해요. 현대 의학이 나날이 발달하고 있지만, 인간의 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습니다. 뇌의 작동 방식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죠. 정신질환은 신체질환보다 파악하기 힘들고, 오진도 많습니다. 환자가 병을 인식하는 일도 어렵고요. 그래서 병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는데요. 저자는 '부모가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해요. 만약 아이가 낯선 말과 행동을 한다면, 화부터 내지 말고 '병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뇌과학을 비롯한 전문서적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병을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우선입니다.

2. 부모 본인의 마음을 다스린다.

눈앞이 아뜩해질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이만하면 잘 대처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앞으로도 힘든 일들이 수없이 많을 테지만 어제보다 오늘은 아주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들도 많다. p. 223

아이가 정신질환을 진단받으면 부모가 공황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저자도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은데 내 명에 죽을 수 있을까’ 싶었다고 해요. 아이가 자해하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 충격적이었는데요. 약물치료를 거부하거나 치료에 따른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력해졌다고 합니다. 저자는 ‘부모가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신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아이와 차라리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다고요. 부모는 우선순위에 있는 일을 하며 본인을 챙겨야 합니다. 질환을 치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완급조절을 잘해야 해요.

3. 치료비, 생활비 계산을 잘하자.

자립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가 병세가 조금 더 나아질 때까지만이라도 국가로부터 공식 부조를 받는 것이 매우 타당하다고 여겼다. (중략) 나는 담당 의사의 소견서와 의무기록들을 모두 준비해서 지역 행동복지센터에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다. 결과는 ‘불인정’이었다. p. 260.

자식을 키우려면 돈이 끝없이 들어간다고 하는데요. 정신질환자의 가족은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합니다. 진단 초기에 병을 확실하게 고치겠다며 돈을 막 쓸 수도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이 치료는 장기전입니다. 부모는 지속해서 치료비를 쓰게 되고요. 아이가 치료하느라 일하지 못하면, 생활비까지 부담하게 됩니다. 입원하면 입원비도 내야 하고요. 정신질환으로 장애인 등록 신청을 해서 공적 지원을 받는 방법도 있는데요. 그 방법도 쉽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일단 '환자가 자립해서 생활하게끔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환자가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벌면 자긍심을 높일 수 있고요. 생활을 기획하며 자립심도 키울 수 있으니까요.

4. 가족을 지켜라.

정신질환 환자들의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 인내, 그리고 회복탄력성일텐데, 이미 많은 가족이 환자를 돌보면서 거의 수도자의 경지에 도달할 정도로 그런 특성들을 체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p. 290.

사람들은 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어도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요. 저자도 가까운 친구는 물론 부모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인들이 저자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잦았다고 하는데요. 저자는 가까운 가족에게 ‘더 빨리 알리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가족이 해체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는데요. 부부가 서로를 탓하다 이혼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저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부모가 정신질환이 있는 아이에게 맞추라’고 권합니다.

5. 소중한 건 바로 지금, 여기

안나가 아픈 후 나는 항상 오늘이 너무 소중했다. 응급실을 가지 않고, 자해를 하지 않고, 밝은 목소리로 나와 연락이 닿은 아이의 지금이 내게는 가장 소중했다. 내일 어떻게 무너지더라도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면 아이와 내가 함께 잘 산 인생이었다. p.241.

저자는 전작인 『죽음을 배우는 시간』(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에서도 현재를 잘 사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한 바 있는데요. 과거를 원망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잘 살라는 것이죠. 물론 정신질환자 가족에게는 과거도 소중해요. 하지만 ‘아이가 준 기억은 이따금 열어보는 보물 선물로 간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해요. 미래를 걱정하며 고통스러워할 필요도 없고요. ‘내가 죽으면 내 아이를 누가 챙기나’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자는 지금 할 일을 찾아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양극성 장애를 갖고 있는 자녀와 대화하는 법>
1. 부모가 먼저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이 질환이 뇌에 생기는 병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병이 ‘뇌 질환’이라고 인식하고, 병에 대해 부단히 공부한다.

2. 아이의 공포를 이해하고 아이를 다독여줘야 한다.
불안해하는 건 아이의 의지 부족이나 나약함 탓이 아니다. ‘위협을 처리하는 뇌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3. 본전도 못 건지는 말들이 있다는 걸 기억한다.
“변명하지 마”, “네가 왜 우울하니?”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심하게 아프면 움직일 수 없다. 병을 이해한다면 이런 말을 하기 어렵다.

4. 듣고 또 듣는다.
아이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야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부모가 열 마디 하고 싶으면 가려서 한마디 한다.

5. 함부로 화내지 않는다.
생각의 결이 다른 아이와 ‘감정적’으로 논쟁하는 것은 금물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그런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한다.

6.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처럼 말하기를 배운다.
아이가 문제를 보일 때 ‘이해의 언어’를 구사하도록 노력한다. (예) “그렇니?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길래 그러고 싶었지?”

7. 발화점을 찾아내 피한다.
‘환자가 참을 수 없는 말’(발화점)을 찾아낸다. 대화를 나누며 발화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더, 마음 읽기 가이드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를 쓴 론 파워스는 자식을 이용한다는 세상의 비난을 두려워했는데요. 저자도 그런 비난을 걱정했을 겁니다. 저도 책을 읽기 전에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요.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책은 엄마가 자녀에게 건네는 귀한 선물이더군요. 자녀를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보고, 공부하고,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자녀 역시 힘을 얻을 것 같아요.

독자들도 책을 읽으며 변할 겁니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고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더 나은 환경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저자는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미쳤다”를 “아프다”로 바꾸면 환자에 대한 낙인이 옅어진다고 하네요. '정신질환'을 '뇌질환'으로 바꿔 부르면 마음의 병이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고요.

저는 책 내용뿐 아니라 저자의 삶의 태도를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어쩌면 저자는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인생은 잔혹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기는 패보다는 지는 패를 잡을 일이 훨씬 더 많다. (중략) 인생은 지는 패를 잡았을 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현실을 냉정하게 살피고 최악을 피하는 방법을 찾으며 인생의 층위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면 이기는 패를 잡은 것 못지않은 인생이 될 수 있다. p. 222.

이혜민 객원기자 lhm5866@hanmail.net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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