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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 보자" 해외 관광객 5만명, 롤드컵 경제효과 2000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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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06면

서울 ‘롤드컵’ 역대급 흥행

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국 T1이 중국 웨이보에 승리했다. [뉴시스]

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국 T1이 중국 웨이보에 승리했다. [뉴시스]

“페이커에게 3대0으로 지더니 이번에는 손흥민에게 3대0으로 졌다.”

지난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2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중국에 완승을 거두자 바이두와 왕이(넷이즈) 등 중국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탄식이 잇따라 올라왔다. 지난 19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에서 우리나라의 SK텔레콤 게임단 T1이 중국 웨이보 게이밍을 격파한 것이 대표팀 축구 경기에서 진 것만큼이나 충격을 줬다는 얘기다. 롤드컵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개최하는 e스포츠 대회의 별명이다. 정식 명칭은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으로 매년 각국 리그를 제패한 최강의 팀들이 모여 승부를 겨룬다. 정식 약칭은 ‘월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e스포츠의 월드컵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에서 롤드컵이란 명칭이 널리 쓰인다. 롤드컵이 한국에서 열린 것은 2018년 이후 5년만, 서울에서 결승전이 열린 것은 9년만이다.

한국팀 T1 7년만에 승리, 페이커 4회 우승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T1 선수들. [사진 라이엇 게임즈]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T1 선수들. [사진 라이엇 게임즈]

롤드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거리 응원전이다. 결승전 당일 날씨는 영하 0.3도까지 떨어졌지만, 1만5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두꺼운 패딩과 핫팩, 목도리로 무장한 채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 설치된 4개의 대형 스크린 앞에 모인 사람들은 추위도 잊고 T1에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충북 청주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회사원 이태원(31)씨는 “월드컵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거리 응원까지 나왔다”며 “실제로 축구보다 더 많이,  쉽게 접하는 취미다보니 훨씬 더 열렬하게 응원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런 열기는 경기장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1만8000석의 입장권은 예매 10분 만에 매진됐다.

인기 걸그룹 뉴진스가 부른 올해 롤드컵 주제곡 ‘GODS’와 그룹 엑소(EXO) 멤버인 백현이 참여한 가상 아티스트 하트스틸(HEARTSTEEL)의 공연으로 막을 올린 결승전은 세계적인 스타 페이커(이상혁·27)를 앞세운 T1이 웨이보를 물리치고 7년 만에 정상에 오르면서 절정에 달했다. 어려서부터 PC방에서 LoL을 접한 10대·20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90년대말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으로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4050세대들도 자녀들과 함께 서울 고척돔을 찾았다. 페이커·제우스·구마유시 등 LoL의 전설과도 같은 유명 프로 게이머를 직접 보기 위해 미국·중국을 비롯한 해외 팬들이 한국을 방문해 열기를 더했다. 라이엇게임즈와 업무 협약을 맺고 이번 롤드컵을 지원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롤드컵을 즐기고자 한국을 찾은 누적 관광객은 5만 명에 달한다.

싱가포르에서 롤드컵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는 칭(26)씨는 “페이커를 4년 전부터 너무 좋아해서 꼭 한번 직접 그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며 “이번에도 결국 중요한 승부처에서 눈부신 활약을 해줬다”고 말했다. 칭씨의 말대로 페이커는 ‘신의 한 수’라고 불리는 판단으로 승리의 주역이 됐다. LoL은 다섯명의 선수가 팀을 이뤄 상대방 본진 깊숙이 있는 건물 ‘넥서스’를 파괴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탑·미들·바텀의 세 갈래로 나눠진 길을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때로는 1대1로, 때로는 5대5로 승부를 겨룬다. 길게는 한시간까지 경기가 이어지지만 이번 결승은 3세트까지 매 세트가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T1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중국 네티즌 “롤게임 지더니 축구도 져”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탑라이너 제우스(최우제·19), 미드라이너 페이커(이상혁·27), 정글러 오너(문현준·21), 원딜 구마유시(이민형·21), 서포터 케리아(류민석·21)로 이뤄진 T1은 e스포츠에서 축구의 레알 마드리드, 야구의 뉴욕 양키스에 비견되는 명문 구단이다. 이달 초 부산 동래구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이번 롤드컵 준준결승에서 중국 리닝게이밍(LNG)을, 준결승에서 중국 징동 인텔(JDG Intel)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롤드컵 4회, 한국 리그(LCK) 10회 우승으로 축구의 리오넬 메시에 비견할만한 ‘세최미(세계 최고 미드라이너)’라 불리는 페이커는 프로 게이머로는 나이가 들어 과거처럼 ‘신컨(신의 컨트롤)’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딛고 8강전과 4강전에서 잇따라 최고수훈선수(POS)로 뽑혔다. 결승전에서 웨이보가 페이커의 주요 챔프를 밴(선택하지 못하게 막는 것)하자 주력 챔프를 꺼내 든 제우스의 활약이 빛났다. 페이커가 ‘신컨’ 대신 ‘신판(신의 판단)’으로 ‘한타 싸움(선수들이 모두 모여 5대5로 겨루는 것)’의 포문을 열면 제우스가 ‘킬(상대방을 잡아내는 것)’을 쓸어담으며 승전보를 올렸다. T1은 7년만의 우승으로 44만5000달러(5억8000만원)의 상금을 받았고, 결승전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은 제우스에게 돌아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e스포츠의 첫 전성기를 열었던 ‘스타크래프트’ 이후 주춤하던 e스포츠는 롤드컵을 계기로 부흥기를 맞고 있다. 2011년 첫 대회의 총상금은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였으나 이후 한국과 중국 팀이 참여하면서 상금 규모가 100만달러(약 13억원)로 뛰었다. 올해 롤드컵 총상금은 222만달러(약 28억원)다. 이번 롤드컵은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고척돔 티켓 판매만으로만 4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고 전 세계에서 롤드컵 결승전을 시청한 사람은 1억 명, 누적 접속자는 4억명에 달한다. 롤드컵 관람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광화문 거리 응원을 위해 상경한 이들의 각종 소비도 주목할 만하다. 업계에 따르면 롤드컵 관련 기사에 노출된 서울의 도시 브랜드 제고 효과와 T1팀에 대한 홍보 효과 등 직간접적인 경제효과는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롤드컵 공식 후원사인 코카콜라, 오포, 레드불 등 기업들도 성공적인 축제 행사 등으로 인한 부수적 광고 효과를 보게 됐다.

업계에서는 e스포츠가 K컬처의 한 분야가 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T1 관계자는 “지난 12번의 국제 대회에서 국내 리그(LCK) 소속팀이 8번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 리그(LPL) 우승팀에서도 우리 선수가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우리나라는 ‘e스포츠의 종주국’ 다운 면모를 보인다”며 “스타크래프트의 임요환·홍진호, 워크래프트3의 장재호, LoL의 이상혁 등 ‘살아있는 전설’의 대를 이을 선수를 꾸준히 발굴하면 e스포츠를 K팝에 버금가는 문화 콘텐트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흐름이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번 롤드컵 흥행을 계기로 더욱 커질 e스포츠 산업에 맞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엇게임즈 CEO “한국 없었다면 e스포츠 자리잡지 못했을 것”

라이엇게임즈가 2009년 10월 출시한 리그오브레전드(LoL)는 10대에서 30대 남성들 사이에서 ‘국민 게임’으로 통한다. 2011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지 약 3달 만에 시장 점유율 1위(게임트릭스 집계기준)에 올랐다.현재도 롤의 PC방 점유율은 39%대로 2,3위 게임(메이플스토리 11%, FIFA온라인4 10%)과 큰 격차를 보인다. 최근 라이엇게임즈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딜런 자데자(사진)는 “한국이 없었다면 e스포츠가 하나의 문화와 현상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개최된 롤드컵이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광화문 광장 ‘팬 페스트’와 같은 다각적인 이벤트를 마련하고 K팝 그룹이 참여하는 주제곡을 내놓는 등 더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트를 채우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수많은 플레이어와 e스포츠 팬은 물론, 큰 힘을 보태준 서울시와 부산시 등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롤이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데 비결은.
“플레이어들과 깊게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것이 라이엇게임즈의 핵심 DNA다. 앞으로도 플레이어들에게 게임 안팎에서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미국 USC 출신의 게임광 마크 메릴과 브랜든 벡이 2006년 9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창업한 라이엇게임즈는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인 도타를 기반으로 한 팀 플레이 게임 LoL을 개발했다. 창립 초기부터 소규모 신생 게임 개발업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투자에 나섰던 텐센트가 2015년 완전 인수했다. 창업자인 메릴과 벡은 게임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2017년 경영진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목표는.
“라이엇게임즈의 미션은 우리 플레이어들이 항상 더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게임을 중심으로 e스포츠와 음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트를 제공할 것이다. 이를 통해 라이엇게임즈를 세계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곳으로 이끄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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