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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돌고 도는 물레방아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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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35면

물레방아, 전북 남원, 1977년 ⓒ김녕만

물레방아, 전북 남원, 1977년 ⓒ김녕만

어렸을 적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왜 그렇게 잠이 쏟아졌는지 모를 일이다. 나도 모르게 꾸뻑 졸다가 깜짝 놀라 눈을 뜨면 눈앞에서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에 떠밀려 급할 것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 뒤로 멀리 황금 들판이 펼쳐졌다. 소위 이발소 그림이었다. 60년대 시골 어린이가 처음 본 그림이 이발소 그림, 물레방아 도는 풍경이어선가. 70년대 후반쯤 거의 사라진 물레방앗간을 남원에서 실제로 보니 와락 반갑고 정겨웠다. 마침 방아를 찧으러 온 두 아주머니의 수다가 물레방아처럼 쉬지 않고 계속되는 중이었다.

곡식을 찧으러 와서 입방아까지 찧는다면 덤이다. 원래 예전부터 물레방앗간은 소문을 만들어 내는 장소였다. 같은 동네뿐만 아니라 이웃 동네 사람까지 만날 수 있으니 곡식이 다 찧어지도록 뒷담화를 나누는 즐거움이야말로 방앗간에 오는 또 다른 재미였다. 게다가 물레방아는 물의 수차를 이용하여 물레를 돌리기 때문에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골짜기 아래, 외진 곳에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물레방앗간은 남녀가 은밀하게 만나는 연애의 산실로 등장하곤 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허 생원은 물레방앗간에서의 애틋한 하룻밤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하고 보름달 휘영청 밝은 밤이면 늘 녹음기처럼 그날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물레방아는 물레와 방아의 합성어다. 물의 낙차를 이용해 돌아가는 것이 물레이고 그 힘으로 방아를 찧어서 물레방아가 되었다. 전기가 보급되자 물레방아의 효용가치가 없어지면서 사라졌는데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관광지나 정원이 넓은 음식점 같은 데에 장식용으로 다시 등장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방아가 없으니 물레방아의 완전체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에게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를 물레방아가 재등장한 것은 향수를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역시 돌고 도는 것이 물레방아인가 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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