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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없이 못 산다” 나폴레옹, 원정 갈 때도 와인 가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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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27면

와글와글, 와인과 글

나폴레옹이 즐겨마셨던 부르고뉴 ‘주브레 샹베르탱’을 생산하는 와이너리. [사진 위키피디아]

나폴레옹이 즐겨마셨던 부르고뉴 ‘주브레 샹베르탱’을 생산하는 와이너리. [사진 위키피디아]

사람들은 왜 결점 많은 영웅을 좋아하는 걸까? 리들리 스콧 감독,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나폴레옹’이 파리를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개봉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떠오른 생각이다. 전쟁술, 리더의 어록, 위인전, 경영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는 나폴레옹. 그를 다룬 출판물은 무려 8만 여권에 이른다 한다. 파란만장한 인생이지만, 특히 첫 부인 조세핀과의 만남은 너무도 파격적이다.

출세 위해 연상 이혼녀 조세핀과 결혼

스물여덟 살의 나폴레옹은 1796년 다섯 살 연상의 신부와 결혼식을 올리는데, 그녀의 이름은 로즈 드 보아르네, 일명 ‘조세핀’이라 불리는 여인이다.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나 아들과 딸 등 두 명의 자녀를 둔 이혼녀였다. 1143쪽에 이르는 프랭크 매클린의 평전 『나폴레옹』에 따르면 그녀는 폴 바라스, 라라즈 오슈 등 프랑스혁명 혼란기의 실력자들과 염문을 뿌렸던 바람둥이였으며 결혼 후에도 남편이 전쟁터를 누비는 동안 젊은 청년과 바람을 피웠다. 책은 전혀 읽지 않고 오로지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는 데 거액을 써서 늘 빚에 허덕거렸다.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사치스러울 때 한 해 170벌의 의상을 구매했던 데 비해 조세핀은 한 해 900벌, 장갑은 1000켤레나 사들였을 정도다.

전도유망한 나폴레옹 장군은 왜 이런 결점투성이 여성과 결혼했을까? “조세핀은 거짓말쟁이고 씀씀이가 엄청나게 헤프지만 못 견디게 매혹적인 무언가를 확실하게 지니고 있었어.” 나폴레옹의 고백이다.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아피아니가 그린 ‘조세핀’. [사진 위키피디아]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아피아니가 그린 ‘조세핀’. [사진 위키피디아]

두 사람의 결합은 양쪽 모두 결핍의 결과물이었다. 출세를 위한 정략결혼이었으며 부족한 부분을 상대가 채워줄 것이라 믿었다. 물론 조세핀의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기는 했으나 나폴레옹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인맥이었다. 그는 원래 이탈리아 영토였던 코르시카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레테, 즉 나폴레옹은 이름이고 보나파르트가 성이다. 열렬한 코르시카 민족주의자였던 그가 프랑스를 위해 이탈리아를 약탈하는 데 선봉에 서게 되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조세핀은 키 작고 신체적으로 매력도 없으며, 아직 가난했던 청년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결혼했을까? “외투와 칼 한 자루밖에 가진 것 없는 젊은이와 결혼할 만큼 바보였나요?” 변호사는 만류했지만, 조세핀에게는 엄마로서의 책무가 있었다. 두 아이에게 아빠라는 롤 모델이 필요했는데,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은 평생 계부 이상의 훌륭한 아빠 노릇을 한다. 조세핀과 이혼한 뒤에도 두 자녀를 향한 나폴레옹의 애정은 식지 않았고, 특히 의붓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를 무척 아꼈으니 그녀의 안목은 정확했다.

에르푸르트에서 괴테를 만났을 때 나폴레옹은 “정치는 운명이었다”고 말했다지만 프랑스혁명의 시대정신 덕분에 그는 기회를 잡는다. 능력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했던 군대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인간의 심리를 활용하는 데 나폴레옹은 천부적이었다. 열병식이 거행될 때면 나폴레옹은 사병들의 귀를 장난스레 잡아당기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줌으로써 말단 부하까지 소중히 생각하는 리더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가 창설한 ‘그랑 다르메(Grande Armee)’, 위대한 국민군대라는 자부심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세핀 사후 1만병 와인 리스트 발견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사진 위키피디아]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사진 위키피디아]

그는 또 선전의 귀재였으며 시각 매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자크-루이 다비드에게 의뢰한 ‘생베르나르 고개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란 그림은 고대 로마제국과 맞섰던 한니발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들어 나폴레옹 신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카이로 인근 피라미드 근처 전투를 앞두고 했다는 말도 유명하다. “병사들이여, 저기 4000년의 세월이 그대들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기억하라.”

모두 군인으로 출세하기 이전 엄청난 독서 덕분이었다. 그는 원래 ‘보케르의 저녁식사’와 유령 이야기인 ‘에식스 백작’ 등 소설뿐 아니라 36권의 비망록과 산문을 남긴 작가 지망생이었다. 글쓰기는 그의 인생을 바꿔준 무기였다. 훗날 ‘나폴레옹 법전’이라고도 불리는 ‘민법전’을 주도하고 완성할 수 있던 비결이기도 했다. 식사를 급하게 한 뒤 자리에서 혼자 훌쩍 일어나는 습관을 여성들은 무척 싫어했지만, 그처럼 그는 군대 야영지의 험한 숙소와 소박한 식사에 익숙했다. 수면 시간도 많지 않고 과음도 삼가는 편이었다. 다만 고향에서 아버지로부터 작은 포도밭을 이어받았던 사람답게 와인을 사랑했다. 쿠데타로 집권할 때까지 암살을 두려워해 공식 행사에도 수행원을 시켜 접시와 나이프, 포크 그리고 자신이 마실 포도주병을 가져왔다. 수행원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거의 매일 같은 음식에 같은 포도주를 마셨는데 ‘주브레 샹베르탱’이었다. 부르고뉴 주브레 지역에서 피노 누아 포도 품종으로 만든 명품 레드와인인데 물과 함께 섞어 마시곤 했다. 이집트 원정을 갈 때도 이 와인은 동반하였다.

“샴페인 없이 나는 살 수가 없다. 승리를 거둔 날에는 즐기고, 패배한 때에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나폴레옹의 유명한 샴페인 찬양이다. 특히 ‘모엣 샹동’을 즐겼다고 한다. 한편 세인트 헬레나에 유배될 때 짐에 코냑 통이 실려 있었는데, 얻어 마시게 된 영국 해군 장교들이 그 코냑을 가리켜 ‘나폴레옹 코냑’이라고 부른 데서 유명한 코냑 브랜드가 연유되었다.

한편 이혼 후 말메종에서 살던 조세핀이 사망하자 지하 저장고에선 1만3000병의 와인 리스트가 발견되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최고급 와인뿐 아니라 스페인 안달루시아, 대서양에 있는 마데이라섬 등에서 생산된 스위트 와인도 다수 발견되었다. 파티와 모임을 주재하는 걸 좋아하던 여주인 취향의 반영이었다.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조세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던 나폴레옹은 영국 관리에게 샹베르탱을 구해 달라 간청했지만 끝내 묵살된다. 영웅의 쓸쓸한 말로였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 를 지냈으며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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