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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7만원짜리 샤넬백 샀어"…틱톡서 번진 '짝퉁 플렉스'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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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대 여성 아만다 레닉은 틱톡을 통해 샤넬백을 자랑했다. 가방을 보호하는 '더스트 백'도 있었다. 하지만 영수증에 적힌 가격은 불과 55달러(약 7만원), 정품 가격(1만200달러)의 185분의 1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레닉은 이 가방이 중국의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 '짝퉁'(복제품)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20대 여성 데니스 듀란은 틱톡에서 다이슨의 헤어기기와 신발 브랜드 어그의 슬리퍼 짝퉁을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듀란은 짝퉁을 구매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알렸다.

한 틱톡 이용자가 에르메스 버킨백 복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틱톡 캡처

한 틱톡 이용자가 에르메스 버킨백 복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틱톡 캡처

Z세대 명품 짝퉁 구매 급증  

미국과 유럽의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이처럼 '명품 짝퉁'을 구매하고 이 사실을 과시하는 새로운 소비 문화가 번지고 있다. 미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턴트가 지난달 미 성인 22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Z세대의 절반에 가까운 49%가 명품 짝퉁인 것을 알고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평균 응답률인 31%보다 높았다.

유럽연합(EU) 지식재산청이 지난해 15~24세 2만2021명을 상대로 물었더니 37%가 지난 1년간 최소 1개 이상의 짝퉁 제품을 샀다고 답했다. 2019년 같은 조사의 응답률인 14%보다 급증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외신들은 짝퉁에 대한 Z세대의 인식이 기성 세대와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거엔 짝퉁을 금기시하거나 구매 후에도 숨기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요즘 Z세대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짝퉁 플렉스'까지 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엔 짝퉁 패션·화장품·생활용품 구매 경험과 방법을 담은 영상들이 올라온다. 미 CNBC에 따르면 틱톡에 '#Dupes(Duplicate, '복제하다'의 줄임말)' 해시태그가 달린 관련 영상들의 조회수는 총 60억 회에 이른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절약'하면서 '검소함 플렉스'

Z세대의 짝퉁 구매가 증가한 건 우선 경제적 이유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의 명품 과시는 Z세대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명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Z세대의 소득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 조지타운대 맥도너 경영대학원의 프라샨트 말라비야 교수는 "Z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소셜미디어 속 이미지를 많이 보지만 구매할 만한 경제적 능력은 없다"며 "그들이 '명품'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짜'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젊은 여성이 다이슨 헤어기기 진품과 복제품을 동시에 사용하며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이 여성은 오른쪽 기기가 짝퉁이라고 밝혔다. 사진 틱톡 캡처

한 젊은 여성이 다이슨 헤어기기 진품과 복제품을 동시에 사용하며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이 여성은 오른쪽 기기가 짝퉁이라고 밝혔다. 사진 틱톡 캡처

이들 Z세대는 '절약 문화'에 익숙한 면도 있다. 미 사회컨설팅 기업 두썸씽 스트레테직의 워커 포스트 수석 전략가는 "어린 시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격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겪는 Z세대는 돈을 절약하는 재정 운영에 정통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돈을 아끼기 위해서이지만, Z세대는 짝퉁을 자신의 검소함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미 Z세대인 카미 마쉬는 WP에 "복제품 소유는 험블브래그(humblebrag, 겸손한 척 은근히 자랑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듀란은 "우린 유행을 좇기 위해 저렴한 대안을 찾는 것"이라며 "짝퉁은 물가가 상승하고 젊은층의 경제적 우려가 높은 시대에 '패션 민주주의'를 실현시켜 준다"고 주장했다.

짝퉁 플렉스를 Z세대의 반항적 소비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명품의 높은 가격대와 경제적 현실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해 "난 영리하게 비싼 명품을 이렇게 싸게 샀다"고 보여준다는 것이다.

온라인서 팔고 SNS서 정보 공유..."부끄러움 사라져"  

복제품 시장이 커진 점도 거부감을 줄였다는 분석이다. 과거엔 음지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온라인에서 대놓고 판매한다. 대상 제품도 가방·신발부터 주얼리, 스포츠 용품, 전자 제품 등으로 다양해졌다. 때문에 짝퉁 구매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있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명품 복제품들을 판매하는 중국의 한 온라인 쇼핑몰. 사진 사이트 캡처

명품 복제품들을 판매하는 중국의 한 온라인 쇼핑몰. 사진 사이트 캡처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복제품 구매 정보를 쉽게 찾고, 널리 전파할 수도 있게 되면서 저렴한 가짜 찾기가 Z세대에겐 새로운 놀이 문화가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인공지능(AI) 명품 감별 기업 엔트루피의 최근 분석 결과 미국과 유럽 Z세대 소비자의 50.7%가 복제품에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품과 구별이 어려워 '슈퍼페이크(superfake)'라 불리는 위조품의 등장도 영향 끼쳤다. ABC뉴스에 따르면 중국의 한 공장은 악어 가죽을 사용해 가짜 에르메스 켈리백을 수작업으로 만드는데 가격은 정품의 10분의 1수준이다. 전 세계 짝퉁 시장은 해마다 성장해 현재 2조 달러(약 2579조원)규모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한 틱톡 이용자가 짝퉁 샤넬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틱톡 캡처

한 틱톡 이용자가 짝퉁 샤넬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틱톡 캡처

프랑스·이탈리아선 짝퉁 착용도 '불법'

지난 15일 뉴욕 맨해튼에선 미 역대 짝퉁 압수품 규모로는 최대인 21만9000점이 압수되는 일도 있었다. 국내에서도 해외 직구사이트 등을 통한 짝퉁 구매가 크게 늘어 전국 세관에서 적발된 짝퉁 직구 제품은 2018년 1만403건에서 지난해 6만2326건으로 6배가 됐다.

지난 15일 미 뉴욕 당국에 의해 적발된 명품 복제품들. 사진 미국 뉴욕 남부지방검찰청 홈페이지 캡처

지난 15일 미 뉴욕 당국에 의해 적발된 명품 복제품들. 사진 미국 뉴욕 남부지방검찰청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짝퉁은 엄연한 지적재산권 침해다. 미국·한국 등지에선 짝퉁 제작·판매가 처벌 대상인 불법이다.

'명품 종주국'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선 짝퉁 구매와 착용도 불법이어서, 적발되면 벌금을 물곤 한다. 실제 짝퉁을 착용한 관광객들에게 벌금이 부과된 사례도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위조품은 미 경제에 연간 6000억 달러(약 772조원)의 손실을 입힌다.

일각에선 명품 회사들이 판매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짝퉁을 선호하는 Z세대가 앞으로 5~7년 안에 가장 큰 소비 집단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엔트루피의 조사에선 Z세대 소비자의 31%가 "명품이 지금보다 저렴해진다면 짝퉁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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