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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대일 손배소 승소…고법, 1심 판결 뒤집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위안부 손해배상소송 항소심 공판에서 승소한 후 법원을 나서며 두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위안부 손해배상소송 항소심 공판에서 승소한 후 법원을 나서며 두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가 1인당 2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선고기일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주문. 1심 판결을 취소한다”는 문장을 듣자마자 방청석에선 놀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휠체어에 탄 채 법정에 나온 이용수 할머니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은 시작이고, 일본이 법에 따라 빨리 공식적인 사죄를 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제기한 이번 소송이 7년간 이어지면서 소 제기 당시 함께했던 곽예남·김복동·이상희 할머니 등은 세상을 떠났다.

이번 판결은 ‘주권 국가를 다른 나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소송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청구를 각하한 2021년 4월 1심 판결과 달리, 한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형성된 국제 관습법상 일본국에 대한 우리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당시 한반도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동원한 피고 측의 불법 행위가 인정되고, 그에 합당한 위자료가 지급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고 16명은 1인당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자별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2억원을 초과한다”며 청구액을 모두 인정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위안부 등 사건에서 매번 논란이 된 ‘소멸시효’에 대해선 “소멸시효 완성도 쟁점이 될 수 있지만 피고 측의 항변이 없어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간 법원에 ‘일본국’을 피고로 삼아 제기된 소송 중 결론이 난 것은 3건이다.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던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1건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제기한 소송 2건이다. 이날 판결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국을 상대로 낸 2건의 손해배상소송에서 모두 위자료를 인정받은 셈이 됐다.

다만 이번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일본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할 가능성은 낮다. 일본 정부는 지금껏 ‘일본국’을 피고로 제기된 손해배상소송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배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한편, 일본 외무성은 이날 오카노 마사타카(岡野 正敬) 사무차관이 윤덕민 주일대사를 초치해 “판결은 극히 유감”이라며 “일본 정부로서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별도 담화문을 통해 “이 판결은 국제법 및 한일 양국 간 합의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즉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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