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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으로 컵 쌓기…0.001초의 승부사 ‘컵벤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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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창원 구산중 박정진 체육교사(가운데)와 스포츠스태킹 선수 전유나(왼쪽부터 시계방향)·전수현·설다은·박다연·남수진 양. 송봉근 기자

창원 구산중 박정진 체육교사(가운데)와 스포츠스태킹 선수 전유나(왼쪽부터 시계방향)·전수현·설다은·박다연·남수진 양. 송봉근 기자

22일 경남 창원시 합포구 구산중학교 내 특별활동실.

5명의 여학생이 커다란 테이블 주변에 둘러서서 여러 개의 플라스틱 컵을 쌓았다 허무는 동작을 반복했다. 소녀들의 손놀림에 따라 컵이 4층으로, 때론 3층으로 세워졌다가 순식간에 차곡차곡 포개졌다. 컵을 옮기는 순서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지만, 도저히 동작을 구분할 수 없었다. 손은 눈보다 한참 빨랐다.

흔히 ‘컵 쌓기’라 부르는 스포츠스태킹은 12개의 플라스틱 컵을 다양한 방법으로 빠르게 쌓았다가 허물며 스피드 경쟁을 하는 이색 스포츠다. 9개의 컵을 3개씩 2단으로 쌓는 3-3-3을 비롯해 12개 모두를 쓰는 3-6-3, 1-10-1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0.001초에 승부가 갈려서 ‘손으로 하는 육상’이라 불린다.

세계스포츠스태킹협회(WSSA)를 중심으로 각국 국가대표를 선발하고 세계 대회도 치른다. 집중력과 함께 민첩성이 중요한 종목이라 신체의 큰 근육이 발달하기 이전인 청소년들이 좋은 성적을 낸다. 국제대회 상위권 입상자들 대부분이 중·고교생이다.

구산중 학생들이 특별활동실에서 흔히 ‘컵 쌓기’라 부르는 스포츠스태킹에 열중하고 있다.

구산중 학생들이 특별활동실에서 흔히 ‘컵 쌓기’라 부르는 스포츠스태킹에 열중하고 있다.

구산중 선수들은 ‘컵벤저스(컵+어벤저스)’라 불린다. 지난 5일 열린 제16회 전국학교스포츠클럽 축전에서 스포츠스태킹 여중부 정상에 올랐다. 2010년에 태어난 1학년생 5명(전유나·전수현·남수진·박다연·설다은)이 팀 결성 후 4개월 만에 출전한 전국 대회에서 3학년 위주의 타 학교 언니들을 줄줄이 꺾고 드라마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단기간에 뛰어난 성과를 낸 것에 대해 설다은 양은 “팀 대항 단체전은 개개인의 기량 못지않게 출전 선수들 간 호흡이 중요하다”면서 “다른 학교에는 우리보다 손이 빠른 선수들이 많지만, 팀워크에서 우리가 앞선 것 같다”고 말했다.

남수진 양은 “처음엔 클럽 스포츠로 농구를 선택했는데 힘들기도 하고 부상 우려가 있어서 고민하던 중 스포츠스태킹을 접하게 됐다”면서 “운동 신경이 뛰어난 한두 명이 경기를 지배하는 다른 종목과 달리 참가 선수 전체가 고른 기량을 지닌 팀이 유리하다는 게 매력이자 장점”이라고 말했다. 훈련은 일과 시간을 쪼개 진행한다. 친구들보다 일찍 등교해 수업 시간 이전에 손을 푼다. 대회가 다가오면 점심 급식을 전교생 중 가장 먼저 먹는 특혜(?)를 누린다. 남은 시간은 오롯이 훈련에 쓴다. 박다연 양은 “훈련이 부족하다고 느낄 땐 주말에 따로 모여서 ‘특훈’을 한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스태킹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는 박정진 구산중 교사. 송봉근 기자

스포츠스태킹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는 박정진 구산중 교사. 송봉근 기자

스포츠스태킹은 운동에 관심이 있지만 과격한 몸동작은 원치 않는 학생들을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전유나 양은 “친구 중에는 ‘내가 못 하면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운동 참여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스포츠스태킹은 개인전도 있고, 운동 능력이 결과를 좌우하는 종목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고 말했다.

구산중 학생들은 “스포츠스태킹이 학업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전수현 양은 “훈련할수록 집중력이 높아지는 게 느껴진다”면서 “국가대표 언니 오빠들의 말을 들어보면 암기력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옆에 있던 수진 양과 다연 양이 활짝 웃으며 “지난번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 우리가 산 증인”이라고 거들었다.

구산중 박정진 체육교사는 “스포츠스태킹을 하면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스포츠로서의 장점 못지않게 어린 친구들이 끈끈하게 뭉치며 화합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면서 “과도한 비용이 들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스태킹은 학교 스포츠로도 제격”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스태킹=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학생들의 놀이로 시작됐으며, 1990년 미국의 방송에 소개된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됐다. 12개의 컵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3-3-3, 3-6-3, 1-10-1, 6-6 등 다양한 형태로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재 승부를 가린다. 두 명이 함께 하는 더블, 팀 대항 릴레이, 팀 시간 릴레이 등의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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