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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한의 군사정찰위성과 ‘핵 3축 체계’ 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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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홍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초빙연구원·예비역 공군 준장

김홍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초빙연구원·예비역 공군 준장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날 때 든 느낌이다. 당시 많은 전문가는 북한이 ‘만리경 1호’ 위성을 탑재한 ‘천리마-1형’ 로켓 발사에서 두 번이나 실패해 러시아의 위성 및 우주발사체 기술을 이전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21일 3차 발사를 강행했다.

하지만, 필자는 북한이 기술 이전과 발사 성공에서 멈추지 않고 궁극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와 같은 ‘핵 3축 체계(Nuclear Triad System)’를 구축하는 데 목표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핵 3축 체계란 지상(ICBM), 해상(SLBM), 공중(이중용도 전투기) 무기체계로 핵무기를 투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김정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강행
육·해·공 핵무기 투발 수단 노려
대북 억제효과 상쇄될 우려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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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화성 계열의 중·장거리 미사일(지상)과 북극성 계열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해상) 등을 통해 핵 2격(Second Strike) 능력 확보에 집착해왔다. 또한 핵무기 소형화를 통해 IL-28과 같이 비록 낡아도 운용 가능한 항공기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왔다. 이 같은 이유로 일부에서는 북한이 제한적이지만 핵 3축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탄탄한 미사일 방어(MD) 능력과 대공방어(AD) 체계를 갖춘 한·미동맹을 상대로 100% 핵무기 사용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수 있다는 고민을 북한은 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다급해진 러시아를 통해 한·미동맹의 비대칭 능력인 감시·정찰 체계를 상쇄할 우주 기술을 요구했을 것이다. 아울러 지금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어려웠던 새로운 항공기 도입을 통해 마지막 퍼즐인 스텔스 항공기를 이용한 핵무기 투하 능력을 구축하려 혈안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2017년 합참의 핵·WMD(대량살상무기) 전략과장으로 근무할 무렵, 북한은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당시 필자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지지 세력과 군부 및 인민을 오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즉, 김정은은 러시아의 미사일 체계를 목표로 고체 미사일, 다탄두 ICBM, 우주발사체 등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미사일 도발에 나설 거라고 필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이런 관점을 지지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후 북한의 미사일 개발 궤적은 필자의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결국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제시한 ‘5대 국방 과업’과 최근의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북한의 무기체계는 필자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음을 증명해줬다.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부에 적이 있고, 빈곤으로 인한 인민의 불만이 증대되고 있는 북한에서는 이런 불안 요소를 외부로 돌릴만한 그럴싸한 목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독재자들처럼 김정은은 인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미국을 굴복시키고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망상에 무게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핵무기 투하가 가능하도록 개조할 수 있는 러시아의 Su-57S 같은 스텔스 능력 확보는 김정은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상과제일 것이다. 이런 일들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정치적 생존을 위협받는 푸틴에게 북한은 무기 공급을 통해 얼마든지 비밀 거래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다. 만약 북한이 우주력 기반 핵 3축 체계 구축에 성공하면 그동안 한·미가 지켜온 항공·우주력을 통한 비대칭 우위 및 억제 효과는 크게 상쇄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단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문제로 국한해 봐서는 안 된다. 작금의 북한 무기 공급 경향성과 적극성을 고려하면 조만간 전 세계의 문제로 확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미동맹과 국제사회는 이런 점을 간과해 북한에 또 따른 기회의 창을 열어줘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대응해 핵 억제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성공 주장은 이런 각도에서 봐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홍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초빙연구원·예비역 공군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