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계 없이 북한경제 속살 한눈에…AI, 위성영상 이렇게 읽었다 [팩플]

중앙일보

입력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위성 촬영 영상에서 경제 지표를 추출하는 기술이 나왔다. 이를 활용하면 경제 지표 측정이 어려운 최빈국이나 북한과 같이 폐쇄된 지역의 경제 발전 상황도 알 수 있다.

무슨일이야

KAIST 차미영ㆍ김지희 교수 연구팀은 위성 영상으로 경제 지표를 추출하는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제 관련 통계자료만 학습한 AI 모델과 달리, 이 모델은 통계 자료 없이도 영상에서 경제 관련 지표를 읽어낼 수 있다. 북한처럼 기초 통계가 미비한 최빈국의 경제 상황도 위성 영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 영상은 유럽 우주국(ESA)이 무료로 제공하는 ‘센티넬-2’ 위성 관측 자료를 활용했다.

경제규모 예측에 주로 사용되어 온 야간조도 영상(좌상단: 배경사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구 관측소 제공). 불빛이 환한 남한에 비해 북한은 평양을 제외하고 전기 수급이 되지 않아 검게 나타남. 반면 이번 연구팀에서 개발한 모델은 북한(우상단)과 아시아 5개국(하단: 배경사진 구글어스)에 대해 더욱 세밀한 경제 예측 결과를 보여준다. 사진 KAIST

경제규모 예측에 주로 사용되어 온 야간조도 영상(좌상단: 배경사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구 관측소 제공). 불빛이 환한 남한에 비해 북한은 평양을 제외하고 전기 수급이 되지 않아 검게 나타남. 반면 이번 연구팀에서 개발한 모델은 북한(우상단)과 아시아 5개국(하단: 배경사진 구글어스)에 대해 더욱 세밀한 경제 예측 결과를 보여준다. 사진 KAIST

연구팀은 “경제 지표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량 측정이나 재해·재난 피해 탐지 등에도 이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변화나 재해로 인한 피해가 큰 지역을 식별하도록 모델을 훈련시키면, 재해 발생 직후 어디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우선적으로 실행해야할지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달 게재됐다.

어떻게 분석하나

연구팀은 위성영상을 약 6㎢의 작은 구역으로 세밀하게 나눈 후, 건물ㆍ도로ㆍ녹지 등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의 경제가 얼마나 활성화 되어 있는지 측정했다. 영상을 읽는 비전 AI가 위성 영상을 읽고 도시와 농촌 등을 구분하면, 사람이 영상을 보고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입력하는 ‘인간-기계 협업 알고리즘’ 방식을 택했다. 연구를 주도한 차 교수는 “예를 들어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으면 좀 더 잘 사는 곳이라는 맥락은 기계가 읽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AI 모델에 입력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해당 모델로 추출한 경제 지표는 기존의 인구밀도, 고용 수, 사업체 수 등의 사회경제지표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특히 연구팀은 북한 지역을 대상으로 이 모델을 적용한 결과도 공개했다. 국제 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가 심화됐던 시기(2016~2019년)에 촬영한 영상을 활용했다. 당시 북한은 평양과 대도시에 자원이 집중돼 도농 간 격차가 심했는데, AI 분석에서 구체적인 수치로도 확인됐다. AI가 지역별 경제 수준을 0~1점으로 평가한 결과, 평양은 0.7점 이상, 원산 갈마지구 등은 0.17점, 위연은 0.02점으로 나타났다. 원산 갈마지구와 같이 외화 벌이 등을 위해 설치된 관광경제개발구에는 신축 건물이 들어서는 등 위성 영상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관측됐지만 양강도 위연과 같은 전통 공업지구나 수출경제개발지구는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2016년과 2019년 위성영상과 경제점수 차이. 관광개발구 중 하나인 원산 갈마지구(상단)는 유의미한 개발이 발견되었으나 공업개발구인 위원개발구(하단)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진 KAIST

2016년과 2019년 위성영상과 경제점수 차이. 관광개발구 중 하나인 원산 갈마지구(상단)는 유의미한 개발이 발견되었으나 공업개발구인 위원개발구(하단)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진 KAIST

연구팀은 네팔ㆍ라오스ㆍ미얀마ㆍ방글라데시ㆍ캄보디아 등의 저개발국에도 같은 기술을 적용해 경제 지표를 수치화했다. 유엔(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따르면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빈곤 인구가 7억 명에 달하지만,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진 않고 있다. 53개국 지난 15년 동안 농업 현황 조사가 없었고, 17개국은 인구 센서스(인구주택 총조사)조차 진행하지 못해 공식 통계가 부족하다. 차 교수는 “데이터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AI 모델을 고안했다”며 “AI 모델을 통해 저비용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상황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중요해  

사회ㆍ환경 문제 해결에 AI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기상예측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구글의 AI 개발 조직 딥마인드는 지난 14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날씨를 예보하는 AI 모델 ‘그래프캐스트(GraphCast)’에 관한 논문을 게재했다. 지난 40년 동안의 날씨 데이터를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했다. 현재 날씨와 6시간 전 기상 정보를 통해 향후 열흘간의 날씨를 1분만에 예측할 수 있다. 기존엔 수퍼컴퓨터를 써도 몇 시간이 소요됐던 작업이다.

엔비디아도 2021년 기후변화 예측을 위해 지구의 디지털 트윈(가상 쌍둥이) ‘어스2(Earth-2)’를 만들었다. 지난 7월엔 기후 데이터를 학습해 폭풍과 이상고온 같은 기후를 예측하는 AI 모델 ‘포캐스트넷’도 공개했다. 기존 AI가 1년 걸리던 작업을 포캐스트넷은 1시간 만에 해냈다는 게 엔비디아의 설명이다.

앞으로는

KAIST 연구팀은 개발한 모델을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다. 위성 영상과 AI를 활용한 SDGs 지표 개발은 한국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분야로 보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개발한 AI 모델에 매년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인공위성 영상을 추가해 AI 모델의 활용 범위를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