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상렬의 세계경제전망

트럼프 복귀 땐 ‘보편 관세 10%’ 초강경 보호무역 덮칠 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선거가 뒤흔들 2024년 글로벌 경제

이상렬 논설위원

이상렬 논설위원

2024년은 선거의 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내년엔 40개국에서 전국 단위 선거가 치러진다. 세계 인구의 약 41%(32억 명), 전 세계 국내총생산 합계의 약 42%(44조2000억달러)에 해당한다. 한국도 4월 총선이 있다. 세계 곳곳의 정치·경제가 요동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선거가 있다.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러시아 대통령 선거(3월), 인도 총선(4~5월) 등이 뒤따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다. 대선 결과가 결정할 미국의 항로는 국제 정치 질서와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

대만·러시아·인도·미국 등 선거
자유무역과 기후대응 등 변곡점

바이든, 미·중 갈등 수위 관리
디리스킹 등 현 항로 유지 전망

트럼프, 중국과 디커플링 나설 듯
고율관세로 무역전쟁 촉발 우려

내년 40개국서 전국 단위 선거

세계경제전망

세계경제전망

1월 13일 새 총통을 뽑는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의 핫스팟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면 양안 간 긴장이 높아지고, 그것이 미·중 대립의 도화선이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대만의 지정학적 위험 고조는 한반도 안보에도 심대한 영향을 준다. 반면 친중 성향인 국민당이나 중도인 민주당이 승리하면 대만 해협의 긴장감은 현저하게 낮아질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의 대중 반도체 봉쇄에 협조해온 대만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관심이다.

3월로 예정된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의 승리는 뉴스가 아니다. 아직 그의 통제력이 약화한 징후는 없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은 2년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과 서방의 경제 제재에 시달린 상태다. 푸틴이 얼마나 많은 국민 지지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동력은 지속하거나 반대로 약화할 수 있다. 반대표가 예상보다 많을 경우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선보다 러시아 국내 단속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할지 모른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4~5월로 예상되는 인도 총선에선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그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의 승리 여부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디의 인도는 중·러가 속한 ‘브릭스(BRICS)’의 중심 국가이면서도 미국의 대중 봉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핵심 파트너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2024년 세계에 최대 위험”

11월 미국 대선엔 특히 지구촌의 이목이 쏠려 있다. 선거전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로 흘러가고 있다.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면 국제 정치와 세계 경제는 현재의 항로를 대체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최대 현안인 미·중 관계는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제거) 국면이 지속될 것이다. 바이든은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대중 봉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21세기판 ‘구동존이(求同存異: 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남겨둔다)’가 전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무역 충돌 수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선 양국의 인식이 같기 때문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2024년 세계에 가장 큰 위험을 제기한다”고 평했다.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온 트럼프가 보복과 경제적 보호무역주의를 거리낌 없이 추구하면서 세계가 큰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경제는 근본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노선이 강경한 보호무역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10% 관세, 인플레·관세 보복 야기 예상

트럼프는 올 2월 공개한 무역정책에서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박탈하고 모든 필수품의 중국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4개년 계획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아웃소싱하는 기업의 연방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중국과 본격적인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을 추진하고, 정상적인 무역관계를 끊겠다는 의미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트럼프 캠프는 특히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의 ‘보편적 기본 관세’ 부과 방안을 가다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는 약 3%인데, 트럼프의 구상은 세 배가 넘는 관세를 보편적으로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는 수입물가 상승을 통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상대국의 관세 보복을 초래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고율의 관세 전쟁은 코로나 이후 간신히 물가 열기를 식혀온 세계 경제를 다시금 연쇄 인플레이션의 진흙탕으로 끌고 갈 뿐 아니라 무역 전쟁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는 악수(惡手)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계획을 그저 ‘공갈’로 여겨선 곤란하다. 트럼프는 지난 2017~21년 집권 당시 수백억 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때리면서 관세 전쟁을 촉발했고, 전쟁은 바이든 정부로 이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2018년 초 3%에서 현재 19% 이상으로 높아졌고,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는 8%에서 21%로 올라갔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종료하면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대체했고, 오바마 행정부가 주창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을 탈퇴시켰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재집권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공들여 추진 중인 IPEF 무역분야 협정을 즉시 폐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각국의 보호무역 경쟁은 글로벌 경제를 오그라들게 한다. 한국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엔 치명적 상황이 된다.

트럼프 IRA 세액공제 철폐 공언

트럼프 정부에선 전기차 보급 확대를 비롯한 기후위기 대응정책의 후퇴도 예견된다. 트럼프는 지난 9월 “취임 첫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또 2032년까지 신차 판매량의 3분의 2를 전기차로 대체하려는 바이든 정부 계획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일각에선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이 공화당 강세 지역에 들어서 있는 점을 지적하며 IRA 보조금 폐지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자동차 전동화가 중국을 유리하게 만든다는 트럼프의 인식, 자동차 노조의 전기차 반감 등을 고려하면 IRA 수정과 전기차 시장 급제동은 상식적인 수순이다. IRA 보조금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한국 배터리 업계로선 달갑지 않은 여건을 맞게 되는 셈이다.

바이든·트럼프 누가 이겨도 박빙 승리

그러나 미 대선까진 아직 1년이나 남았다. 백악관 주인이 경제를 바꾸기도 하지만, 경제가 백악관 주인을 바꾸기도 한다. 투자은행 JP모건에 따르면 1912년 이래 선거일 전 2년 이내에 경기 침체가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현직 대통령이 대략 4번 중 3번은 승리했다. 대체로 현직에 유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제에 큰 변고가 생기면 극적 반전이 일어난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었던 2020년엔 야당 후보인 바이든이 현직인 트럼프를 꺾었다. 2008년 대선 당시의 금융위기는 야당 후보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이어졌다.

최근 바이든이 트럼프에 밀린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있지만, 선거 전문가들은 누가 이기든 박빙의 승리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바이든은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성과를 전면에 내세운다. 취임 후 14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21개월 연속 4% 미만의 실업률이 대표적 지표다. 그는 IRA, 반도체법 등을 앞세워 국내외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경기를 살렸다. 그러나 이런 성과가 유권자들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6월 9.1%까지 치솟은 뒤 지난 10월 3.2%까지 하락했다. 그런데도 물가는 여전히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권자들은 휘발유 가격, 집세, 식료품 등에서 매일매일 확인되는 실질 구매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지난해 대부분의 미국 가계 소득이 상당히 감소했다. 가구 중위소득의 경우 2021년 7만6330달러에서 2022년 7만4580달러로 2.3% 줄었다. 미국 유권자 10가구 중 7가구가 이런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경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 순풍이 되어야 하지만, 현 상황에선 순풍이 충분치 않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물가 잡고 경기침체 피해야 바이든 유리

경제 상황이 바이든 재선에 결정적 힘이 되려면 물가는 떨어지고 경기 침체는 오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금리를 ‘더 높게 더 오래’ 가져가겠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기조가 ‘저물가·경기 연착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유권자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름값도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위태로워진 중동 정세가 유가 급등을 촉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미국이 최근 중동의 확전 방지를 위해 적극 개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 이후 세계 경제의 진로는 전 세계 유권자에게 달렸다. 특히 미국 유권자의 선택이 중요하다. 그들의 마음은 투표일까지 경제 상황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상당히 좌우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아슬아슬한 한 해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