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시가격 현실화 원점 재검토"…또 미뤄진 공시가 로드맵 수술

중앙일보

입력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 로드맵 개편을 또 미뤘다.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로드맵을 폐기할지, 수정·보완할지를 1년 넘게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대신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답만 내놨다. 당장 전문가 사이에선 ‘맹탕’, ‘빈 수레’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20일 서울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강남지사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관련 공청회’를 열어 이같이 발표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송경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행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체계 안에서 목표 현실화율 하향 조정, 목표 달성 기간 연장 등 부분적 개선만으로는 현실화 계획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해결할 수 없다”며 “현실화율 로드맵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화율을 시세에 근접하게 산정할 필요가 있지만, 그보다 지역·유형·가격대별 차등으로 인한 불균형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며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시가격은 정부가 과세 등을 위해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감정 평가를 거쳐 정하는 평가가격이다. 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건강보험료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얼마만큼 반영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시세 10억원짜리 주택에 현실화율 70%를 적용하면 이 주택의 공시가격은 7억원이 된다. 올해 기준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공동주택 평균이 69%, 표준주택(기준 단독주택) 평균이 53.6%, 표준지(기준 토지)가 65.5%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앞서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최장 2035년(공동주택은 2030년)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세의 90%까지 올리는 로드맵을 내놨다. 그러나 공시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실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1년 종합부동산세 납부자 1명이 내는 평균세액은 601만원으로 1년 새 332만원 늘었다. 송 부연구위원은 “기존 현실화 계획을 따르면 주택분 재산세 부담이 34%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여기다 지난해 집값 하락으로 시세가 공시가격을 밑도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고, 2024년 이후 공시가격에 적용할 현실화율 계획은 이달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선 현실화율 개편안을 두고 “2040년까지 목표치를 80%로 두고 완만하게 올릴 것”(박합수 건국대 겸임교수)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알맹이 없는 맹탕’에 그쳤다. 이유리 국토부 부동산평가과장은 “여러 대안을 검토했는데 기존 현실화 계획을 수정하는 것으로는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모든 대안을 열어놓고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공청회 논의 결과를 토대로 내년 공시가격에 적용할 조치를 조만간 결정한다.

전문가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강춘남 태평양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는 “해마다 별도의 공시가격을 발표하는 게 아니라 전년도의 연장선상에서 발표되고 있어 국민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 현실화율 로드맵은 꼭 필요하다”며 “현시점에서 내년 공시가격에 적용될 현실화율이 이렇게 (재검토) 되는 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부동산 전문가는 “현실화 계획을 만드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니 의아하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실화율을 올리기 부담스럽기 때문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반면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증세 로드맵’”이라며 “매년 현실화율이 바뀌는 현 로드맵은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