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시도 가능성에 공식 경고를 보내며 위성 발사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도발이 이뤄지기도 전에 군이 선제적으로 경고를 날린 건 이례적으로, 남북 간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등 전격적 조치를 취하기 전 사실상 ‘최후통첩’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강호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20일 “북한이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현재 준비 중인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이 같은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우리 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北, 9·19 합의 3400회 위반”
눈에 띄는 건 이날 발표에서 북한 정찰위성 발사의 불법성 뿐 아니라 북한이 그간 벌인 합의 위반 사례를 열거했다는 점이다. 군 당국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부터 언급하며 “(북한은)이 같은 합의의 목적과 취지를 지속적으로 위반해왔다”고 강조했다. 2018년 판문점 선언 제1조 3항에 따라 설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평양공동선언 제5조 1항에서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를 영구폐기하기로 해놓고선 오히려 개선해서 운용하며 관련 합의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9·19 군사합의에 대해서도 “2019년 11월 창린도 해안포 사격을 시작으로 중부 전선 최전방 소초(GP) 총격 도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의 미사일 발사, 수도권 지역으로의 소형 무인기 침투 등 9·19 군사합의 조항들을 명시적으로 위반했다”며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해안포의 포문 폐쇄’를 매년 100여 회에서 1000여 회씩 위반함으로써 2023년 11월 현재까지 누적된 위반행위는 약 3400여 회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임 北에”…김정은에 공 넘겼다
이는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등 북한 위성 발사 뒤 취할 군 당국의 조치를 염두에 두고 ‘북한 책임론’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그간 아무리 합의를 위반했어도 한국이 먼저 남북 간 합의를 무력화하는 데는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날 발표를 통해 9·19 군사합의의 일부를 효력 정지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사전에 북측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알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북한이 보인 행태는 합의 준수에 대한 그 어떤 의지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이날 강 본부장의 발언도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앞서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을 앞두고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도 “북한의 소위 ‘정찰위성’ 발사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필요한 조치를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찰위성 발사 뒤 공식 규탄 성명을 내왔던 지금까지 행보와 달리 발사 전부터 합참 명의의 경고 메시지가 나온 점도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북한의 위성 발사 준비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 북한을 압박해 판단을 바꾸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실제 합참은 북한의 위성 발사가 임박했다면서도 이날 기자단과 비공개 브리핑에서 관련된 구체적인 징후는 특별히 밝히지 않았는데, 사실 설명보다 대북 압박에 방점을 찍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주발사체→정찰위성 용어 변경 왜?
그동안 ‘북한 주장 우주발사체’라는 표현을 써온 군 당국이 이날 ‘북한 군사정찰위성’이라는 용어를 명시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1·2차 발사 시 인양 부품을 정밀 분석한 결과 군사정찰위성 용도로 평가했다”며 “탄도미사일 기술을 적용한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고 우리 국민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확한 사실을 알리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역시 9·19 효력 정지의 불가피성을 의미하고 있다는 게 군 안팎의 평가다. 북한이 정찰 목적으로 위성을 쏜다는 점을 확실하게 규정해야 9·19 합의 효력 정지로 정찰 능력을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한국의 주장에도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9·19 군사합의의 접경지역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군단급 무인정찰기(UAV) 운용이 제한돼 갱도나 산의 후사면에 숨은 북한 장사정포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포착,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위성발사에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뛰어넘는 군사 대응 카드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사전에 나온 합참 명의 경고 메시지의 무게감을 가볍게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다. 실제 군 내부에선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의 행동을 억제할 또 다른 대응 카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번주 한국을 찾는 미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 등 미 전략자산을 활용해 강도 높은 훈련이 실시될 수도 있다.
한편 북한의 ‘후견국’ 역할을 하는 중국이 참여하는 외교 일정이 북한의 위성 발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조만간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위해 한국을 찾을 예정인데, 북한이 이에 맞물려 정찰위성 도발을 할 경우 중국의 입장은 다소 난처해질 수 있다.
앞서 지난 11~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데도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동향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한 직후 북한이 군사 도발에 나선다면 이는 중국이 용인했거나, 북한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시 주석으로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결국 ‘중국 역할론’을 요구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중 정상회담에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