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로' 150대 1…경찰·교사도 사찰복 입고 사랑 싹트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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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템플 체험관 3층. ‘나는 절로’란 글자가 적힌 현수막 아래 사찰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남성들이 먼저 일렬로 앉자, 뒤이어 여성들이 마주 앉았다. 이들은 쑥스러운 듯, 눈을 마주치는 대신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3년 만에 처음 주최한 ‘만남 템플스테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18~19일 1박 2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총 20명이 참가했다. 종교 불문 누구나 신청 가능한 이번 행사에는 전화 문의만 2600여건, 이메일 접수 500여건 등이 몰렸다.

“일상 속 만남 어려워”…경찰·교사도 ‘나는 절로’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2030 남녀 20명이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서윤 기자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2030 남녀 20명이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서윤 기자

 ‘만남 템플스테이’는 합장 인사를 비롯한 기본적인 사찰 예절 연습, 사찰 안내 등과 함께 시작됐다. 여기까진 평범한 템플스테이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기소개가 시작되자 절 안은 은근한 긴장감과 떨리는 목소리로 채워졌다. 20명의 참가자는 준비해온 ‘작업 멘트’와 함께 각자 매력을 뽐냈고, 이후 가장 궁금한 이성을 지목했다. 준비해온 빨간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자기소개를 한 이모(37·여)씨는 “절에서 하는 행사지만, 종교적 화합의 의미를 담기 위해 준비했다”며 “여기서 마음으로 화합하는 사람을 만나 이번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주로 사는 곳과 하는 일, 취미 등을 소개했다. 한 남성 참가자가 “운동을 좋아해서 야구도 하고 등산도 많이 다녀 한라산·지리산·설악산 다 갔다 왔다”고 하자 한 여성 참가자가 “나도 지리산 갔는데 정말 좋았다. 주말에 같이 운동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올해 10㎞ 마라톤만 세 번 했다. 몸만 오면 계획은 다 내가 짜겠다”며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2030 남녀 20명이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서윤 기자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2030 남녀 20명이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서윤 기자

 참가자 연령대는 28살부터 37살까지고, 30대 초반이 가장 많았다. 직업은 공무원, 경찰, 초등학교 교사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 연구원 등 다양했다. 충북 오송에서 올라왔다는 원종훈(32·남)씨는 “일·집만 반복하고, 가끔 운동하는 것 외에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다. 새로운 만남을 갖고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 공무원 임현섭(37)씨도 “직장에 남자가 많아 연인을 찾기 어렵고 이성을 소개 받을 기회가 적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바비큐 술자리 대신 비빔밥, ‘랜덤 데이트’ 대신 차담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참가자들이 사찰 안내를 받고 있다.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참가자들이 사찰 안내를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거나 거절하는 시간은 없었다. 대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순한 맛’ 행사가 이어졌다. 간단한 게임을 통해 짝 지어 공통점 찾기 대화를 나누고, 저녁 공양 시간에는 ‘삼겹살 바비큐’나 밤샘 술자리 대신 비빔밥과 비건 군만두로 이뤄진 사찰식을 먹었다. 식사 후엔 ‘랜덤 데이트’ 대신 10분마다 자리를 바꿔가며 여러 이성과 대화를 나누는 ‘티 파티’가 열렸다. 저녁이면 감정이 뒤섞이며 ‘사랑의 전쟁터’가 되는 ‘나는 솔로’와 달리, 이들은 오후 8시 30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오전엔 인근 공원이나 인사동을 산책했다. 주최 측에서 짝을 지어주진 않았지만, 이들은 자연스레 짝을 맞춰 걸었다. ‘속마음 인터뷰’도 없었고, 대신 스님과의 차담이 진행됐다. 2인 1상으로 앉아 서로 차를 따라주고 약과를 먹여줬다. 오전 10시 30분, 행사가 끝나자 참가자끼리 연락처를 주고받거나 식사 약속을 잡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주최 측은 “이후부터는 사생활이기 때문에 사후 관리나 성혼 결과 추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쟁률 150:1 ‘역대급’ 관심… “안전한 만남 추구”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 참가한 2030 남녀 20명이 게임을 통해 짝을 찾고 있다. 장서윤 기자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 참가한 2030 남녀 20명이 게임을 통해 짝을 찾고 있다. 장서윤 기자

 만남 템플스테이 행사는 2012년 시작해 34번째를 맞았다. 특히 이번 행사엔 ‘역대급’ 관심이 쏟아졌다. 주최 측에 따르면 지난 10여년 간은 통상 약 50건의 신청이 접수됐지만, 이번엔 전화 문의·신청만 1600여건, 이메일 접수 500여건이 쏟아지며 반나절 만에 마감됐다. 마감 후에도 전화 문의가 1000건 이상 이어졌다고 한다. 참가 경쟁률이 약 150대 1로, 예년보다 10배 이상 치열해졌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유행하고 결혼정보회사가 각종 커플 매칭 행사를 여는데 이어, 지방자치단체와 종교계의 ‘청년 중매사업’까지 함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경기 성남시가 주최한 단체 미팅에는 200명 모집에 1188명이 몰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코로나19 시기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일상에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어려워진 젊은이들의 욕구가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에 호응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오프라인 만남 기회가 적은 상황에서 여러 연애 프로그램도 인기를 얻고 있다. 직접 참여해서 흥미로운 경험을 해보고,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안전한 만남도 추구하겠다는 욕구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주최 측이 저출생 위기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1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23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주최 측이 저출생 위기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해당 행사는 보건복지부 인구교육 활성화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예산도 복지부가 지원한다. 주최 측은 “새로운 인연, 올바른 연애에 관심 있는 2030 세대에게 이성을 만날 기회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행사를 열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은 “스님은 독신이지만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반면, 혼자 사는 청년이 늘어나 걱정”이라며 “여기서 좋은 인연을 맺어 결혼까지 하게 되면 주례를 서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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