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질 협상' 진전 속 美·이스라엘 전후 '가자 통치' 놓고 이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인질 석방을 위해 5일간 교전을 중지하는 합의에 근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백악관은 이와 관련 "아직 합의는 없다"면서도 "미국이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북부에 머물고 있던 팔레스타인 가족이 당나귀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남부 지방으로 피난을 가고 있다.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지상군 작전을 진행한 이스라엘 군 당국은 조만간 민간인 수십만명이 피난해 있는 가자지구 남부 지방으로 지상군 투입 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AFP=연합뉴스

가자지구 북부에 머물고 있던 팔레스타인 가족이 당나귀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남부 지방으로 피난을 가고 있다.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지상군 작전을 진행한 이스라엘 군 당국은 조만간 민간인 수십만명이 피난해 있는 가자지구 남부 지방으로 지상군 투입 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AFP=연합뉴스

인질 문제를 가지고 하마스와 거래해선 안 된다는 이스라엘 내 일부 강경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미국이 주도한 협상이 구체화 되면서 일각에선 며칠 내에 가자지구에서 첫 일시적 교전 중지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질 석방을 중재 중인 카타르의 셰이크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총리는 19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인질 협상이 타결될 것이란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며 "인계 방식 등 매우 사소한 문제들만 남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도하에서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며칠 동안 (합의에) 진전이 있었다"며 이렇게 밝혔다. 또 보렐 대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중단"을 촉구했다.

한편 하마스를 궤멸시킨 이후 가자기구를 어떻게 통치할지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에 통치권을 이양해야 한다는 미국과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바이든 ‘4대 원칙’ 공개 천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하마스가 파멸적 이념에 매달리는 한 휴전은 평화가 아니다”라며 이스라엘의 '하마스 궤멸 작전' 자체에는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전쟁 이후 상황에 대해선 이스라엘과 의견이 달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재 기자들에게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REUTERS=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재 기자들에게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REUTERS=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두 국가 해법’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 모두의 안보를 장기적으로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가자와 서안은 하나의 통치 구조로 재통합돼야 하고, 궁극적으로 PA가 힘을 찾은 뒤에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테러 근거지로 가자 활용 불가 ▶팔레스타인인 강제 이주 불가 ▶이스라엘의 가자 재점령ㆍ포위ㆍ봉쇄 불가 ▶가자지구 영역 축소 불가 등 기존에 밝혀온 가자지구에 대한 ‘4대 원칙’을 재확인했다.

2005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뒤 2007년 내전을 통해 PA를 서안지구로 몰아낸 하마스를 축출하는 데까지는 동의하지만, 하마스를 축출낸 뒤에는 가자와 서안지구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간 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다시 ‘거부’ 시사한 네타냐후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에 또 다시 이견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PA는 가자지구에 대한 책임을 넘겨받을 능력이 없다”며 “가자지구에 테러를 지지하고 장려하며 가르치는 민간 당국을 둘 수 없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전후계획에 이견을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REUTERS=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REUTERS=연합뉴스

실제 네타냐후 총리는 반복적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직접 통치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무기한 전반적 안보를 책임질 것”(6일 ABC 인터뷰), “어떤 경우에도 가자의 안보 통제권을 포기할 수 없다”(11일 TV연설)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내 일부 강경파의 입장과 유사하다. 네타냐후 총리가 강경론을 지속하는 배경은 하마스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론 때문에 미국 및 서방이 이스라엘을 지원할 명분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지지율 하락 속 대내외 압박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시신들을 점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시신들을 점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나는 하마스가 궤멸할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는 뜻을 세계에 알린다”며 강경론을 내세웠다. 그러면서도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구호를 허용하지 않으면 국제적 지지가 줄어들 것”이라며 민간인 피해 대책 마련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특히 “전시 내각은 (국제사회의)가자지구 연료 반입 요청을 만장일치로 승인했고, (이 때문에)미국이 중요한 무기와 방어용 장비를 지속해서 보내고 있다”며 미국의 지속적 지원을 받기 위한 인도적 조치가 불가피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람에서 이스라엘인들이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hoto by GIL COHEN-MAGEN / AFP)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람에서 이스라엘인들이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hoto by GIL COHEN-MAGEN / AFP)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교전 중지+인질 석방' 협상 진행

네타냐후 총리를 향한 대내외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인질 석방을 위한 일시적인 교전 중단 협의가 진행 중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이스라엘과 미국이 하마스와 5일간 교전을 중지하는 대신 여성과 어린이 인질 수십명을 석방하는 합의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애초 WP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잠정 합의했다고 보도했다가 백악관 측의 설명 뒤 협상 타결에 근접했다는 취지로 기사를 변경했다.

WP에 따르면 양 측이 논의 중인 합의 조건은 인질 240여명 중 50명 가량을 24시간마다 석방하는 대신, 그 기간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반입하는 것이다. 이 조건에 따르면 최소 5일간 전투 작전을 중단하게 된다.

반면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이 양측간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시 교전 중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새벽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가자지구로 납치해간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카타르의 중재로 하마스와 협상을 벌여왔다.

앞서 미국인 2명, 이스라엘인 2명 등 모두 4명이 풀려났지만 약 240명 가량이 아직 하마스에 붙잡혀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민간인 사상자가 크게 늘고 전력난, 식수 부족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되자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휴전 또는 일시적 교전 중지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하고 있다.

지난 4일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 AFP=연합뉴스

지난 4일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 AFP=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도 협상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타결이 임박했다’는 보도에 대해 “잘못된 보도이고, 지금까지 어떤 협상도 타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남부에 대한 지상군 작전 개시를 예고했다. 가자 남부에는 북부에 있던 팔레스타인 주민 수십만 명이 피난해 있다. 남부 지역으로 전선이 확대될 경우 민간인 피해가 확대되면서 인질 석방을 위한 국제사회의 교전 중단 압박이 보다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