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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기업 사기 공매도로 드러나, 금지하면 리스크 커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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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호 13면

세계적 공매도 투자자의 쓴소리

2020년 니콜라 기술 사기 보고서로 명성을 얻은 힌덴버그리서치는 올해 초 인도 아다니 그룹의 분식 회계를 폭로해 약 76%의 시가총액을 증발시켰다. 가운데는 네이선 앤더슨 힌덴버그리서치 창업자. [AP=연합뉴스], [사진 힌덴버그리서치]

2020년 니콜라 기술 사기 보고서로 명성을 얻은 힌덴버그리서치는 올해 초 인도 아다니 그룹의 분식 회계를 폭로해 약 76%의 시가총액을 증발시켰다. 가운데는 네이선 앤더슨 힌덴버그리서치 창업자. [AP=연합뉴스], [사진 힌덴버그리서치]

“공매도가 사라진 한국에서는 결국 모든 투자자가 피해를 보게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공매도 투자자인 네이선 앤더슨(Nathan Anderson) 힌덴버그리서치 창립자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공매도 한시 금지에 대해 “역사상 주요 상장 기업의 사기 행각은 모두 공매도에 의해 드러났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연일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장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 공매도 금지로 인한 피해가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의 공매도는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한 구조여서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런데다 주가 하락기에 일부 외국인과 기관의 불법 공매도가 적발돼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이 때문에 ‘시장 정상화’를 목표로 내년까지 공매도를 한시 금지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공매도는 헤지(위험 회피) 수단이자 기업의 위법 행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앤더슨도 그간 주가 조작이나 실체가 없는 기업, 회계 조작이 의심되는 기업 등을 상대로 공매도를 앞세워 싸움을 벌여 왔다. 2020년 ‘제2의 테슬라’로 불리던 수소전기차 업체 니콜라의 사기극을 밝힌 것도 당시 36살의 앤더슨이었다. 올해 1월에는 인도의 대기업인 아다니그룹 분식 회계 의혹을 제기했고, 최근에는 중국 드론택시 기업 이항의 주가조작을 폭로하기도 했다. 앤더슨은 공매도가 증시에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장치라고 믿는다. 지난주 이메일을 통해 앤더슨을 만났다.

공매도 투자는 어떤 식으로 하나.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고 판단한 기업이나 부정이 의심되는 기업에 공매도를 한 뒤, 기업을 샅샅이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경영 부실이나 임원의 부정행위 의혹 등을 밝혀 주가를 끌어 내리는 식이다. 일각에선 ‘타인의 불행으로 수익을 낸다’고도 하는데, 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공매도 인식이 안 좋은 건 사실이다.
“주가 하락에 배팅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공매도가 필요한 이유다. 주가가 계속 오르기만 희망한다면 기업의 부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공매도 투자자는 기업의 부정을 적발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주가 상승을 견인한다. 역사상 주요 상장 기업의 사기는 공매도 투자자에 의해 드러났다.”
한국 정부는 공매도를 금지했다.
“‘공정한 가격’ 형성을 위해 공매도를 금지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으로 보인다. 공매도 금지 당시 코스피는 8월 최고치보다 15%가량 하락한 상태였다. 전쟁 등 대외 악재가 많아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단 전망이 많았고, 이로 인해 개인 투자자의 불만이 쌓이자 공매도를 금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주가를) 통제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정부는 시장교란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공매도 투자자가 불법을 저질렀다면 시장 전체가 아닌 해당 투자자의 행위만 처벌하면 된다. 지금처럼 전면 금지하는 건 결코 불법 행위를 막는 조치가 아니다. 주가 하락을 방어해 개인 투자자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일 뿐이다. 시장 질서를 바로 잡겠다며 공매도를 금지하는 건 가장 쉽고, 게으르며, 비생산적인 방법 중 하나로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을 방해할 뿐이다.”

실제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공매도 한시 금지에 대해 “1조7000억 달러(약 2210조원) 규모의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 자금의 참여를 억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투명성을 떨어뜨려 투자 매력도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매도는 증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공매도는 주가가 과도하게 오른 주식에 하락을 베팅해 주가가 본래 가치대로 평가받도록 돕는다. 시장이 패닉에 빠지거나 폭락하는 상황에서는 자금을 투입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를 금지하게 되면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 기능이 사라져 시장이 경직되고, 자본 투입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된다.”

자본시장연구원도 8월 ‘공매도 규제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공매도 금지 조치는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매도 금지는 가격 효율성을 떨어트리고, 변동성을 확대하며, 시장 거래를 위축시킨다”면서 “전면 금지처럼 극단적인 방식보다는 기능은 유지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증시 전망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업 임원의 배임 증거 등을 고발하는 내부고발자를 포상하기도 하는데, 한국은 이런 제도도 없다. 여기에 당분간 공매도까지 금지한 만큼 시장 정화 기능이 사라지는 셈이다. 공매도 금지를 주장한 정치인들은 단기적으로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겠다. 부도덕한 기업이나 임원도 공매도 금지를 기뻐하겠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돌아가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공매도 금지는 항상 역효과를 낳았다. 공매도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할 때(숏커버링) 일시적인 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가, 이들이 빠져나가면 더 큰 하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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