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진석 실형 박병곤 판사의 친야 SNS…'엄중 주의' 처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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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친야(親野) 성향’ 페이스북 글들로 재판 공정성을 의심받은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에게 지난달 ‘엄중 주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박 판사가 지난 8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하자, 여권에선 박 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던 친야 성향 게시물들을 문제 삼았다.

 16일 국회가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답변에 따르면, 대법원은 “박 판사가 법관 임용 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게시한 일부 글 중 정치적 견해로 인식될 수 있는 글을 올린 부분에 관해, 지난달 18일 소속 법원장(김정중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통해 엄중한 주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2017년 9월 20일 페이스북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씨가 가출하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최악의 막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연합뉴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2017년 9월 20일 페이스북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씨가 가출하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최악의 막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연합뉴스

박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은 그가 8월 10일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시작됐다. 법조계에선 “실형은 튀는 선고”(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라는 견해와 “적정한 판결”(중견 변호사)이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자 여권은 박 판사가 과거 페이스북 게시물을 문제 삼았다.

특히 ▶지난해 3월 10일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직후 올린 “이틀 정도 울분을 터트리고, 절망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글 ▶2021년 4월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직후 올린 ‘승패는 병가지상사.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중국 드라마 캡처 사진 등이 이목을 끌었다. 박 판사는 이 게시물들을 모두 정진석 의원 1심 기일 직전 스스로 삭제했고, 선고 직후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당시 “법관의 정치적 성향과 (정 의원) 사건 판결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판사의 정치적 표현 행위가 판결 신뢰성마저 떨어뜨리고 있다”(장동혁 국민의힘 의원)는 비판이 거세지자, 대법원은 8월 중순 관련 SNS 글들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이준 대법원 윤리감사관은 지난달 11일 국정감사에서도 박 판사 감사 결과를 독촉받자 “중요한 사안이라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이 10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및 법원행정처 등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이 10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및 법원행정처 등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약 2개월간 심의 끝에 대법원은 결국‘소속 법원장을 통한 엄중 주의 촉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김정중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지난달 18일 박 판사를 만나 주의를 줬다.

법원이 박 판사의 SNS 활동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소지를 인정했음에도 ‘소속 법원장을 통한 주의 촉구’라는 처분에 그친 것은, 이런 경우에 적용할 만한 별도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2012년 “SNS상에서 사회적·정치적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자기 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권고인 만큼 강제성은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창원지법에 근무했던 이정렬 전 판사가 ‘가카(각하)새끼 짬뽕’이란 합성 사진을 올려,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서면 경고를 받은 게 법관의 SNS 활동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제재 사례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이런 지적에 “법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중립성의 외관을 갖춘 규범을 만들 수 있는지 논의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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