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문자가…" 한밤 112에 걸려온 전화, 가정폭력 SOS였다

"엄마(한테) 문자가 안 들어왔어."

한밤중 112 상황실로 걸려온 생뚱맞은 전화에 위험한 상황임을 알아차린 경찰이 가정폭력 피해자를 구조했다.

인천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 권민지 경사는 상황실 전입 2일 차 야간 근무 중에 이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한 권 경사는 "다음 전화를 받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신고자가 다급하게 "아니, 아니야…"라고 외쳤다.

수화기 너머로 신고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권 경사는 순간 신고자가 제대로 통화하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아빠랑 같이 있어"라는 신고자의 말에 가정폭력 상황임을 알아차렸다.

권 경사는 이후 실제 엄마와 전화 통화하는 아이처럼 신고자와 말을 주고받으며 주소지와 이름 등을 확인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맞으면 1번, 아니면 2번 등 휴대전화 버튼음을 누르게 했다.

그 사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신고자 남편의 폭행 사실을 확인하고 긴급 임시조치에 나섰다. 이를 거부하며 경찰까지 폭행한 신고자의 남편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피해자의 신고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가정폭력 추가 피해를 막은 권 경사의 사례는 경찰청이 16일 발간한 '2023 소리로 보는 사람들'에 실렸다.

여기에는 권 경사 외에도 112신고에 우수 대응한 사례가 소개됐다.

강원청 박용희 경위는 자칫 단순 반복 행위로 무시할뻔한 소란 신고를 그냥 넘기지 않고 경찰관을 출동시켜 건설현장 기숙사에서 흉기를 소지한 채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피의자를 신속하게 검거했다.

강원청 한상재 경사는 숫자 다이얼이 눌리는 '삐∼삐∼' 소리만 듣고도 위급 상황임을 알아차려 남성에게 폭행당한 채 방에 있던 여성 피해자를 구조했다.

대전청 송승아 경사는 '아파트에서 떨어질 건데 다른 분들이 보기 전에 제 시신을 수습해달라'는 자살 신고자를 자극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가며 출동한 경찰관들이 안전하게 구조하도록 도왔다.

한 경사는 "누군가에겐 절박한 순간의 마지막 지푸라기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무응답 신고 한 통도 허투루 받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