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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체포영장' ICC 소장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고문 시각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피오트르 호프만스키 ICC 재판소장이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피오트르 호프만스키 ICC 재판소장이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피오트르 호프만스키(67)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이 우리나라 법무부가 추진하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에 대해 “사람이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환경 자체가 고문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호프만스키 소장은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열린 법무부·외교부·대법원 공동주최 ‘ICC 아시아·태평양 지역 고위급 세미나’ 참석 차 방한했다.

호프만스키 소장은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미디어 인터뷰에서 ‘판사로서 사형제와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인권 측면에서 보면 사형수가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상태로 감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고문이라는 시각이 있다”며 “가석방 없는 무기형도 마찬가지로 심한 처벌일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어떤 한 시각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며 “아시아만 봐도 공통적인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아 각 국가가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프만스키 소장은 이어 “ICC는 전범(戰犯) 등 중대범죄를 다루지만 사형을 선고하진 않는다. 허나 사형제를 운영하는 당사국(가입국)에 사형 금지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고 덧붙였다. 폴란드 출신의 호프만스키 소장은 1981년부터 폴란드 실레시아 대학, 비알리스토크 대학, 야기엘론스키 대학 등에서 법학을 가르쳤다. 1994년에 판사로 임관해 1996년 폴란드 대법원 형사 판사를 역임하고, 2015년에 임기 9년의 ICC 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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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는 전쟁 범죄와 대량 학살 등 반인도범죄에 대한 단죄를 목적으로 1998년 유엔 외교회의에서 채택된 로마규정을 근거로 2003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상설 국제형사재판소다. 미국·중국·러시아·이스라엘 등을 제외하고 123개국이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2002년 11월 로마규정을 비준하면서 ICC에 가입한 후 올해의 경우 아시아 태평양 국가 중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860만 유로(약 118억원)의 기여금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권오곤 전 당사국의회 의장, 송상현 전 소장, 정창호 재판관을 배출했고, 백기봉 변호사가 차기 재판관 후보자로 입후보 중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피오트르 호프만스키 ICC 소장이 지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법무부-국제형사재판소 고위급 세미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법무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피오트르 호프만스키 ICC 소장이 지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법무부-국제형사재판소 고위급 세미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법무부

ICC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우크라이나 아동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혐의로 지난 3월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러시아 역시 지난 9월 호프만스키 소장을 포함해 ICC 재판관 3분의 1을 지명수배하는 등 보복조치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호프만스키 소장은 “푸틴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는 공개할 수 없지만, 유죄를 입증해나갈 것”이라며 “지명수배를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재판관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푸틴 체포영장이 실제 집행될 가능성은 낮다. ICC 관계자는 “ICC는 법원이라 영장을 발부할 순 있지만, 실제 체포에는 당사국 사법기관과의 협업 또는 비당사국의 자발적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오트르 호프만스키 ICC 재판소장이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피오트르 호프만스키 ICC 재판소장이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호프만스키 소장은 북한 내 인권 문제에 대해선 “현재 ICC에 북한 영토에 관한 관할권이 없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거치는 방법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김정은을 처벌해야 한다고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재판관이 법정에 제출된 근거를 보지 않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긴 부적절하다”고 했다. ICC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가입 당사국 국민이 저지르거나 당사국 영토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다. 2003년 출범 이후 ICC는 현재까지 17개 사건을 조사하고 40건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중엔 약 30만명이 숨진 2003년 수단 다르푸르 학살, 2012년 이슬람 반군 출신의 말리 이슬람 유적지 파괴 사건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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