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컷칼럼

부상하는 잘파, 소멸하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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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근대화 이후 한국의 정치·사회·문화를 설명했던 주요 이론 중 하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가 1930년대 독일을 분석하며 고안한 개념인데, 시대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상황을 뜻한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압축성장 이면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강렬한 충돌로 봤다(『비동시성의 동시성』). 민주주의를 이식받은 한국은 서구와의 근대적 시간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겪었다. 앞선 나라에 대한 문화적 사대주의도 만연했다.

디지털 기술이 연 ‘극동시성’ 시대
0~19세 세계비중 33%, 한국 15%
초고령 한국, 청년 의견 더 들어야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유·청소년기까진 선진문물의 유입에 시간차가 있었다. 일본 문화는 국가가 직접 수입을 금지해 전파가 더뎠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일본 영화와 만화, 게임은 해적판으로 접하기 일쑤였다. 책에서만 보던 외국을 개인이 직접 자유롭게 경험하게 된 것도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의 일이다. 정치의식, 사회제도, 문화콘텐트 등 전 분야에서 선진국과 이질감이 있던 한국인들은 ‘비동시적인 동시대’를 살아갔다.

 그러나 ‘비동시성의 동시성’ 이론은 이제 약효가 다했다. ‘잘파(Z+알파)’ 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와 2010년대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는 디지털 기술로 세계사의 발전을 동시적으로 경험하고,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된 ‘극동시성’의 시대를 살아간다. 이른 새벽 뉴욕에서 발생한 사건을 LA보다 서울에서 먼저 알 수도 있고, 밀라노의 최신 유행을 이웃 국가인 그리스보다 빨리 접할 수도 있다.

 소셜 플랫폼과 그 안에서 소비되는 문화 콘텐트 역시 대한민국이 최강국이다. 잘파세대는 핸드폰 하나로 국경 없이 전 세계를 누빈다. 모바일만 연결돼 있으면 누구나 세계사를 동시적으로 경험한다. 초연결사회의 심화가 ‘비동시성의 동시성’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네이티브인 잘파세대에게 세상은 하나다.

 온라인 역시 또 하나의 현실처럼 여기는 잘파세대에게 선진국은 추종과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잘파세대가 선진국의 중장년층보다 디지털로 연결된 글로벌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하다. 잘파세대는 국내의 다른 세대보다 국외의 같은 세대에게 오히려 더욱 큰 동질감을 느낀다.

 10~20년 후 잘파세대가 국경 없는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주축이 됐을 때 한국은 어떨까. 전 세계 80억 명의 세계 인구 중 0~19세는 33.2%다. 부모세대인 40~50대(23.1%)보다 1.4배 많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다. 한국의 0~19세 비중은 15.5%뿐이다. 40~50대(32.1%)의 절반밖에 안 된다(조영태 서울대 교수). 인구구성이 글로벌 평균과 정반대인데, 경이로운 초저출산 기록까지 매년 경신하고 있어 미래는 더욱 어둡다.

 역사상 가장 큰 인구집단인 잘파세대가 부상할수록 우리는 새롭게 열리는 디지털 중심의 정치·경제·사회적 공간에서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잘파세대의 입지가 열악한 한국사회에선 잘파 중심의 글로벌 마켓을 이해하기 힘들고, 그와 관련한 정치적 의사결정도 떨어질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자신이 경험하는 생활세계의 인식과 틀을 뛰어넘긴 어렵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이 그렇다. 일본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유난히 느린 것은 인구구조 탓이 크다. 단카이 세대가 여전히 사회·경제적 권력을 쥐고 있고, 정치인들도 득표에 유리한 중장년층의 구미에 맞는 정책만 펼친다. 일본의 인공지능 산업이 노인 돌봄 로봇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처럼 인구구조는 그 나라의 경제정책과 기술발전의 방향까지 결정한다.

 2025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출산율(0.78명)은 일본(1.4명)의 절반밖에 안 된다. 올해는 0.6명대로 떨어질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역사상 유례없는 초저출산과 초고령화로 국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연금개혁 이슈처럼 중장년층에게만 유리한 의사결정도 공고해진다. 청년층은 인구 크기도 작고 투표율도 낮아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인구 문제의 해법이 출산 혜택을 주는 것에만 그쳐선 안 된다. 글로벌 인구구조의 격변 속에서 젊은 세대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초고령 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잘파가 부상하는 글로벌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몸은 늙어도 생각이 젊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1인 2표, 아니 3표, 4표를 준다는 생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만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

글 = 윤석만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