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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제2 중동 특수에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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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사우디 전문가 랄프 비게르트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국제유가가 올해 7월 이후 석 달 동안 눈에 띄게 올랐다. 정작 이때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성장률은 -4.5%(전년동기 대비)까지 곤두박질했다. 뜻밖이다. 고유가는 사우디 경제에 복음이었다. 1차 오일 파동으로 한국 등 원유 수입국이 고통을 겪기 시작한 1973년 사우디 경제는 24%나 성장했다.

이랬던 사우디 경제에 올해 무슨 사달이 난 것일까. 네옴시티 건설 등을 계기로 제2의 중동붐을 기대하는 한국이 헛물을 켜고 있는 것일까. 국내엔 드문 사우디 경제분석가인 랄프 비게르트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 중동·북아프리카경제팀장을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사우디 경제 마이너스 성장세
‘고유가=고성장’ 등식 무너져
원유 감산으로 민간경제 위축
‘중동 불안’ 확산 여부에 촉각


요즘엔 원유값보다 생산량 중요

지난달 23일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과 함께 리야드의 네옴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과 함께 리야드의 네옴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유가에도 사우디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했다. 이 석유 왕국에 무슨 일이 있었나.
“기자가 말한 대로 2023년 3분기(7~9월) 사우디 성장률은 -4.5%였다. 팬데믹으로 경제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2020년 3분기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원유 생산을 줄인 탓이다. 하루 100만 배럴 줄였다. 약 10% 정도를 줄인 것이다. 사우디 경제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30~35% 수준인데, 10% 감산은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사우디에서 고유가는 성장 엔진인데.
“단기적으로 국제유가는 경제성장에 영향이 거의 없다. 원유 생산량이 문제가 된다.”
랄프 비게르트

랄프 비게르트

사우디는 산유국들 사이에선 생산조절국(swing producer)로 불린다.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산유국이 합의한 규모 이상으로 생산을 줄이거나 늘려 가격 급등락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2023년 7월 사우디는 OPEC+(주요 산유국 협의체)의 감산과는 별도로 하루 100만 배럴을 추가로 줄이기 시작했다.

상식 밖이다. 사우디 정부가 국제유가를 기준으로 석유회사에서 로열티를 받는데도 가격상승보다 감산 여파가 크다니 놀랍다.
“사우디 정부는 국제원유 가격을 바탕으로 최소 15% 정도 로열티를 받는다. 하지만 아람코 등 자국 석유회사의 요청을 받고 얼마 전 로열티를 인하했다.”

사우디 정부는 브렌트유 가격을 기준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이하인 경우 로열티를 20%에서 15%로 2020년에 낮췄다. 대신 70~100달러이면 로열티를 40%에서 45%로 인상했다. 또 100달러를 넘으면 로열티는 80%에 이른다.

미국 고금리 정책이 직격탄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2023년 7월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웃돌았다. 사우디 정부가 원유가격의 45% 정도를 로열티로 받았을 텐데, 채굴량을 하루 100만 배럴 줄였다고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할까.
“앞서 말했듯이 석유 부문이 GDP의 최대 35% 정도다. 단기적으로 기름값보다 생산량이 중요하다. 감산 때문에 석유 부문 성장률이 올해 3분기에 -17%까지 낮아졌다. 반면에 비석유 부문이 플러스 성장세를 보여, 올해 3분기 성장률이 -4.5%까지 떨어지는 데 그친 것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원유 감산 외에 사우디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다른 이유가 있을까.
“사우디 통화정책은 미국과 맞물려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페그 시스템(1달러=3.75리얄)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국제 원유시장에서 원유가격이 달러로 표시되는데, 변동 환율제이면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2022년 3월부터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이때 사우디 중앙은행도 긴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고금리이면 사우디도 고금리다. 그 바람에 사우디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이 상당히 위축됐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사우디가 원유 감산의 직격탄을 맞았는데, 감산정책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까.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올라도 사우디가 얻을 게 없을 듯한데.
“S&P글로벌이 보기에 사우디는 2024년 말까지 감산을 유지할 전망이다. 자발적 감산을 앞으로 12개월 이상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가 둔화해 원유 소비가 줄어든다면, 국제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사우디의 감산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세계 경제가 (통화긴축이 낳은) 둔화에서 빨리 벗어나 원유 소비가 늘어난다면, 사우디 감산은 중단된다. 감산 지속이냐 아니면 중단이냐는 세계 원유 수요에 달린 셈이다.”
사우디는 네옴시티 건설 등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사우디가 자본(오일 달러)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는 것 아닐까.
“사우디 탈석유 전략인 ‘비전2030’은 외국인 투자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아직은 오일 달러가 메가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자금줄이다. 당장 사우디가 자본 수입국이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네옴시티 프로젝트 차질 우려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사우디를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는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듯하다.
“기자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기 전에 ‘메가 프로젝트 덕분에 제2의 중동 특수를 누릴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하마스 갈등이 걸프지역 어디까지 퍼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사태가 퍼져 사우디 등이 휘말린다면, 메가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물론 이스라엘-하마스 갈등 때문에 현재까지는 거대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나 큰 상황이다.”

◆랄프 비게르트=독일 태생. 포츠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경제의 경쟁력과 에너지 비용 등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중동 오만의 전기와 수자원 정책을 자문하기도 했다. 2004년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영입된 뒤에는 사우디와 UAE 등 걸프지역 핵심 국가의 경제 분석을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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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터뷰는 더중앙플러스 글로벌머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www.joongang.co.kr/article/25206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