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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팍팍하다는데…한국은 ‘힘든 가계’ 되레 감소,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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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전 세계적으로 고유가·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경제 여건이 더 팍팍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가계 재정이 악화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2년 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주요국 흐름과 역행하는 것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처한 상황과 향후 전망을 볼 때 긍정적 신호라고 보기만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13일 OECD의 ‘2022년 사회적 위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25개국(2020년 조사 미참여 국가 제외) 국민 중 ‘가계의 경제적 상황이 1년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생각한 비율은 41.3%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2년마다 실시되는데 2020년엔 32.1%로 9.2%포인트 더 낮았다. 코로나19 초창기보다 엔데믹 이후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고 느낀다는 의미다.

국가별로 보면 ▶오스트리아 28.4 →49.5% ▶덴마크 17.3 → 38% ▶폴란드 42.7 → 62.1% ▶독일 26.8 → 45.1% 등 유럽을 중심으로 비율이 많이 증가했고, 미국(23.6 → 31.1%)과 터키(51.2 → 58.1%) 등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반면 한국은 주요 흐름과 역행하는 결과가 나왔다. 2022년 기준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생각한 비율이 36.8%로 2년 전 43.1%보다 6.27%포인트 하락했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3고(高)’ 현상을 피해 가지 못한 한국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2020년 당시 고통이 현재보다 더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팬데믹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은 다들 빚을 내 버텼던 때다. 특히 외국에선 재정 지원을 많이 풀었는데 한국은 정부 지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1년 경제전망’ 자료를 보면 2020년 9월 기준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쏟은 재정지원(재정지출+세제 지원)은 국내총생산(GDP)의 3.5%로 주요 20개국 평균(6.6%)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미국은 11.8%, 일본은 11.3%를 지출했다.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로부터 2년 뒤인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유럽의 제재에 발끈한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자 2021년 배럴당 평균 69달러(IMF 통계)였던 국제 유가는 2022년 98달러로 치솟았다.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 의존도가 40%가 넘는 유럽은 직격타를 맞았다. 에너지와 식량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인플레이션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럽은 완충 작용 없이 에너지 가격 상승 직격타를 맞았지만 한국은 한국전력 등 공공부문이 수십조 적자를 보면서 일차적으로 충격을 흡수했다”고 말했다. 한전은 2021년 12월부터 역마진(한전이 전기를 사들이는 구매단가가 전기요금인 판매단가보다 높은 것)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가계 재정이 나아졌다고 느껴지더라도 마냥 기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잘못하면 미뤄온 청구서를 한꺼번에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2021년 이후 한전의 누적 적자는 47조원이 넘는다. 결국 한국도 언젠가는 미뤄왔던 매를 맞아야 할 때가 올 것(전기요금 인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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