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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600억' 1심 진 임지훈…판결문 보니 '이것'이 이유였다

중앙일보

입력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 겸 카카오벤처스 대표. 사진 카카오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 겸 카카오벤처스 대표. 사진 카카오

임지훈 카카오 전 대표가 카카오벤처스(카벤)를 상대로 낸 600억원대 성과급 소송 1심에서 지난 8일 패소했다. 임 전 대표는 2012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설립한 카벤의 초대 대표를 맡아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에 대한 투자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후 임 전 대표는 2015년 9월 카카오의 네 번째 대표로 취임해 2018년 3월까지 일했다.

성과급 지급 여부를 둘러싼 공방은 임 전 대표가 카카오 대표로 발탁된 뒤인 2015년 12월 카벤과 다시 맺은 성과급 변경 계약의 효력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6부(부장 이원석)는 “(카벤의) 1인 주주인 카카오 경영진의 의사가 반영되긴 했지만, 상법 388조가 규정한 주주총회(주총) 결의가 없었으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계약 변경 과정에 “절차상 흠결이 있었다”는 카벤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결과였다. 선고 당일 공개되지 않았던 판결문을 입수해 재판의 쟁점을 들여다 봤다.

임지훈 발목 잡은 두 가지는 

 변경 계약은 ‘2015년 5월 기준 60%였던 성과급 우선귀속분을 44%로 낮추되 직무수행기간과 상관없이 성과급을 전액 지급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임 전 대표는 이 내용에 따른 성과급을 598억원으로 산정해 요구했지만 카벤이 ‘절차상 흠이 있으니 줄 수 없다’고 맞서자 지난해 3월 21일 소송을 제기했다.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창업자 겸 전 이사회 의장). 뉴스1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창업자 겸 전 이사회 의장). 뉴스1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주주총회 결의의 유무였다. 상법 388조는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총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고 규정한다. 임 전 대표 측은 해당 계약 변경이 카벤의 100% 모회사였던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 신인섭 부사장, 임지훈 대표의 승인 하에 이뤄졌으므로 “주총 결의나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것이 주총 결의라는 증거는 없다”며 “구체적인 성과보수의 분배대상과 분배금액은 주총 결의로 정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성과보수 계약상의 ‘최소 직무수행기간’도 공방의 초점이 됐다. 계약상 성과급은 4년의 직무 수행기간을 채워야만 지급받을 수 있는데, 임 전 대표는 카카오 대표로 적을 옮기며 약 3년 3개월만 카벤에 근무했다. 이를 두고 카벤은 “성과급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임 전 대표는 “계약 변경의 목적 자체가 직무수행기간과 무관하게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것”이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임 전 대표 측 주장대로 해석하는 게 맞다”면서도 “실제 지급하려면 이를 승인하는 별도의 주총 결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왜 중요한 소송일까

① 이 소송은 두나무의 시장 가치가 8500배 뛰며 불거진 ‘역대급 성과급’ 분쟁이다. 2013년 3월 8일 임 전 대표 주도로 카카오벤처스의 1호 사모펀드인 ‘케이큐브1호 벤처투자조합펀드’가 2억원에 매입한 두나무 상환전환우선주 1000주 등의 평가액은 2021년 12월 27일 펀드 청산 당시 1조7000억원까지 불어났다. 당초 880억원대였던 청구금액은 재판 과정에서 598억원으로 조정됐는데, 여전히 개인이 청구한 성과급 소송 가운데 최대 규모다. 임 전 대표 측이 법원에 낸 인지 대금만 2억원 이상이다.

이번 성과급 소송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출시 이후 두나무의 비상장주식 가치가 8500배 뛰며 불거졌다. 사진 업비트

이번 성과급 소송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출시 이후 두나무의 비상장주식 가치가 8500배 뛰며 불거졌다. 사진 업비트

② 향후 벤처캐피털(VC) 업계의 성과급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국내 VC 임원은 “심사역들이 사측에 계약서나 확약서, 주주총회 등 성과보수 지급에 대한 절차를 확실히 지켜달라는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소심 쟁점은

 임 전 대표 측은 항소할 예정이다. 1심의 쟁점이었던 주총 결의의 범위를 다시 따질 가능성이 크다. 임 전 대표 측은 “우리나라 주요 상장 법인들이 임원의 보수에 관해 구체적인 금액이나 분배비율을 주총으로 결정한 사례가 있는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현대·LG 등 주요 기업들이 임원 성과급의 세부 내역까지 주총으로 결의하진 않는다는 취지다.

성과급의 정산 시점도 치열한 공방을 피할 수 없는 잠재적 쟁점이다. 두나무의 언제 주가에 따르느냐에 따라 성과급의 액수도 천지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문제의 변경계약에는 ‘회사가 펀드로부터 성과보수를 수령하는 것을 전제로, 회사는 대표이사가 본건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명한 회사의 임직원 및 대표이사에게 본 조에 따라 성과급 재원을 그 수령일로부터 1년 이내에 현금으로 분배한다’고 적혀 있다.

1심에서 임 전 대표는 카벤이 두나무 주식을 분배받을 당시의 1주당 가액인 46만9559원을, 카벤은 케이큐브 1호 펀드에서 성과보수를 받고 1년 뒤인 지난해 12월 27일의 1주당 가액인 7만8400원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카벤이 성과보수분(전체의 20%)으로 보유했던 두나무 68만8100주의 가치는 3200억원일 수도 있고 540억원일 수도 있다.

비슷한 전례 없었나

크래프톤의 글로벌 히트작 '배틀그라운드'. 사진 크래프톤

크래프톤의 글로벌 히트작 '배틀그라운드'. 사진 크래프톤

 VC업계의 성과급을 두고 소송이 불거진 사례는 국내에 많지 않다. 전례로는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이 지난해 5월 ‘투자회사가 심사역에게 8억원에 일부 이자액을 더한 금액을 지급하라’고 심사역의 손을 들어준 이른바 ‘배틀그라운드 성과급 소송’이 거의 유일하지만 이번 소송과는 쟁점이 달랐다.

이는 2019년 부경훈 전 케이넷투자파트너스 심사역이 전세계 흥행에 성공한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제작사 크래프톤에 초기 투자한 성과를 인정해달라며 케이넷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었는데, 1·2·3심과 파기환송심 모두 명확히 존재하는 계약서를 기반으로 ‘얼마의 성과급을 줄지’에 대한 계산법이 쟁점이었다. 익명을 원한 변호사는 “임지훈-카벤 소송은 계약의 절차상 하자가 문제가 되는 반면, 배그 소송은 계약의 유효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비교하기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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