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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2023년에 부르는 ‘한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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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전시에서 디지털 이미지로 재연한 19세기의 한양 시장 풍경. 왼쪽 선전은 비단을 파는 가게다. 박정호 기자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전시에서 디지털 이미지로 재연한 19세기의 한양 시장 풍경. 왼쪽 선전은 비단을 파는 가게다. 박정호 기자

약 200년 전, 1844년 조선 땅에 ‘한양 찬가’가 울려 퍼졌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패티김 ‘서울의 찬가’)과 비슷하다. ‘하늘이 내린 왕도(王都) 해동의 으뜸이라. 외관도 화려하고 문물도 거룩하다’고 노래했다. 중인 계층의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한양가’의 앞부분이다.
 그때도 한양은 나라의 핵이었다. 정치·경제·문화의 알짬이었다. ‘팔로(八路)를 통하였고 연경(燕京·북경) 일본 닿았구나 우리나라 소산들도 부끄럽지 않건마는 타국 물화(物化) 교합하니 백각전(百各廛·온갖 가게) 장할시고.’ 세상 귀한 것이 모인 한양의 시장 풍경이다.

200년 전 생기 넘쳤던 한양 풍경
서울사람, 지방사람 차별도 생겨
김포-메가시티 논란, 뭐가 중할까

 요즘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있는 ‘서울 구경 가자스라’(내년 2월 12일까지)에는 활기가 넘친다. ‘한양가’에 등장하는 궁궐, 관청, 시장, 놀이, 능행(陵幸), 과거(科擧)와 관련된 각종 자료, 그리고 이를 재연한 디지털 영상이 푸짐하다.
 ‘한양가’는 조선 후기 서울의 풍속을 다룬 최초의 한글 문학이다. 당대에 필사본과 방각본(坊刻本·상업적 출판물)이 유행할 만큼 민간에 널리 퍼졌다. 한양 전반의 경제·문화력이 단단해졌다는 증거다. ‘한양가’는 이른바 ‘서울사람’에 대한 종합 보고서다. 1392년 조선 건국 이래 새 도읍을 예찬한 글이 적잖았지만 한양 사람이 먹고사는 모습을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적은 없었다.

1844년 한산거사가 지은 '햔양가' 앞대목.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1844년 한산거사가 지은 '햔양가' 앞대목.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서울사람은 18세기 초반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양가’ 주해서를 펴낸 강명관 전 부산대 교수에 따르면 한양 거리는 조선 전기와 후기가 사뭇 다르다. 전기에는 지방 사족(士族)과 군인, 그에 딸린 노비 등이 한양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뒤 다시 향촌으로 내려갔다면 임란·호란 큰 전쟁을 거치며 사회가 비교적 안정된 후기에는 ‘경화세족(京華世族)’이 서울을 장악하게 됐다. 서울과 경기·충청 지역 출신이 중앙 관직을 쥐락펴락하며 ‘지방사람’과 구별되는 서울사람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한양가’는 이런 시대의 풍요를 기뻐한다. 한산거사는 19세기 중반의 찬란한 왕조문화를 칭송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그늘이 숨어 있다. 19세기 중반은 세도정치가 깊어지며 조선의 생기가 기울어진 때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한양가’는 시대는 어려웠어도 사람들은 발랄하게 살아갔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에 당시 지배층은 나라나 백성보다 가문과 벌열(閥閱)의 이익을 꾀했으며, 결국 조선은 쇠락과 망국의 길로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두 세기 전 ‘한양가’를 감상하며 ‘2023 한양가’를 그려 본다. 그때보다 비교할 수 없이 잘살고 풍요로운 요즘이다. 19세기 중반 한양 인구는 20만여 명, 조선 전체의 2%가 채 안 됐다. 지금은 940만 명에 18%에 이른다. 더욱이 수도권 인구는 2020년에 50%를 넘어섰다. 국토의 10% 남짓한 곳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게 사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지난 2일 한국은행이 우리 사회에 ‘레드카드’를 보냈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수도권의 구조조정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최근 여당발 김포시의 서울 편입 논란이 너무나 한가해 보이는 이유다. 아무리 내년 총선용 기선잡기라 해도 당파의 이익이 국가의 앞날보다 화급할 수는 없다.
 여당의 공세에 머뭇거리는 야권도 야권이지만 현재 콩 볶듯이 요란한 김포-메가시티 이슈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당의 사전 협의는 없었다”는 용산의 잇따른 메시지는 곰곰 생각해도 납득 불가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왜 있을까. 200년 전 ‘한양가’ 장단에 춤추며 자기 주변만 챙긴 세도가마저 생각난다.
 한국은행 보고서를 다시 들춰 본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별 거점도시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게 우리의 활로라고 제안한다. 인구절벽과 청년실업을 풀어가는 실마리도 그곳에 있다고 권한다. 지금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살 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