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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수십억 들여 특허도 땄는데…무용지물 위기 놓인 의료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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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국민 세금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 특허를 취득한 의료장비가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이 장비의 보험 수가 적용에 난색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이 항공우주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0일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이 항공우주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12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한빛내과의원 이두용 원장(의학박사)은 2022년 수액을 일정하게 주입할 수 있게 한 ‘자동정밀주입장치(아큐드립·아큐밸브)’를 개발했다. 이 가운데 아큐드립(Accu-Drip)은 수액 주입량을 제어하는 장비본체이고 아큐밸브(AccuValve·소모품)는 아큐드립에 장착해 수액 양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이 원장은 "병원 등에서 수액을 일정하게 주입하지 않으면 약물 치료효과가 떨어지고
과량주입시 환자가 위험해 질 수 있다고 한다"라며 "이런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 개발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FDA(미국식품의약청)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수액 주입 과정 부작용 사례는 5만6000건이 보고됐다. 이 가운데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실제로 2021년 대전에서 30대 여성이 비타민 수액을 맞다 목숨을 잃은 적도 있다. 유족측은 “해당 의원이 수액을 맞는 동안 상태를 제대로 체크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일정 시간당 수액 투여량이 너무 많지 않았는지, 투여 속도가 너무 빠른 건 아니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7년 연구·개발, 식약처 허가·특허 등록

이 원장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과 2013년부터 약 10년간 연구·개발했다. 연구비는 정부 예산 등 2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 장비는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를 받았다. 또 국내외 특허 등록을 하고, 조달청 혁신 시제품(2021년)에도 지정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국제표준개발사업(2021년)에도 선정돼 국제 표준 등록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 원장에 따르면 이 장비는 중력(수압) 차를 이용해 일정한 압력으로 수액을 주입한다. 수액 투입 중 바늘 끝이 조직으로 이탈하면 자동으로 주입이 중단된다.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과 한공우주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 신진호 기자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과 한공우주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 신진호 기자

이 원장은 “자동정밀주입장치는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의료진이) 입력한 수치를 기계에서 자동 음성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정확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특히 항암제 투여 환자나 소아과 환자에게 유용하다”고 말했다.

2개로 구성된 장치…심평원 "1개만 인정"
이 원장은 2020년 9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아큐드립과 아큐밸브 등 2개 장비 모두 보험수가를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아큐밸브 장비 1개에만 보험수가 적용을 결정했다. 이들 두 개 장비가 개별적인 게 아니라 한 몸으로 봤기 때문이다. 심평원은 "기존 수액 투여 방법과 대상과 목적, 방법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중보상 우려가 있다" 고도 했다.

지난 10일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이 항공우주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0일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이 항공우주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심평원의 결정에 따라 아큐밸브에만 보험수가(3920원)가 적용되고 아큐드립은 보험수가를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보험수가 별도로 받지 못하면 장치 무용지물

보험수가가 적용되지 않으면 의료기관에서 이 원장이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를 들여놓기 쉽지 않다고 한다. 아큐드립 장비값이 대당 약 180만원으로 싼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심평원 판단 근거가 '법령에 근거 하지 않은 불합리한 규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일한 기능을 위해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니는 장비 2개 가운데 1개에만 보험수가를 적용해주는 것은 장비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관행을 타파하고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는데 현장에서는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과 한공우주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 신진호 기자

대전 한빛내과 이두용 원장과 한공우주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발한 자동정밀주입장치. 신진호 기자

이 원장은 심평원에 해당 판단에 대한 근거 규정과 평가에 참여한 위원들의 구체적인 의견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심평원 측은 “의사 결정 과정과 내부 검토 과정의 사항을 공개하면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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