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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만연화 vs 노동자 보호 '노란 봉투법' 논란…전문가 의견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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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국회 처리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들의 단독 처리로 통과됐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국회 처리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들의 단독 처리로 통과됐다. 연합뉴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노정갈등 국면이 깊어지고 있다. 노동계에선 ‘산업현장 평화법’·‘노동자 보호법’이라며 즉각적인 시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일제히 “위헌성이 크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용자 범위 확대…“죄형법정주의 위배” vs“불법행위 감소”

12일 국회와 노동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데 있다. 그동안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사용자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자로 정의돼 왔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사용자를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범위를 확대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조도 삼성전자 본사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파업 등 쟁의행위 대상을 ‘근로조건 결정’에서 ‘근로조건’으로 바꾸면서 임금·복지 문제 뿐만 아니라 부당해고나 사업지 이전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쟁의에 나설 수 있도록 바꿨다.

노동계에선 하청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불법 행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섭 대상을 찾기 위한 불필요한 쟁의 행위를 줄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섭을 진행할 수 있게 되며, 장기적으로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감소할 것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는 사용자 개념이 과도하게 확대되고, 교섭 범위도 예측할 수 없으면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질적 지배력’의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사용자 정의를 놓고 또 다른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사용자는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서 형사처벌(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는데, 기준이 불명확하면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기존 노조법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현행 노조법은 한 사업장 안에 복수의 노조가 있을 경우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대표 노조를 정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조도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단일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며 “여러 가지 부작용이나 후속 효과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이은주 당시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노란봉투법 봉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이은주 당시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노란봉투법 봉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쟁의 손해배상, 민주노총이 99%

민법상 손해배상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란봉투법은 손해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을 정하도록 규정한다. 이때 기업은 수십명의 불법행위자 중에 어떤 사람이 얼마의 손해액을 발생시켰는지 일일이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에선 소위 ‘손배 폭탄’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애당초 합법적인 쟁의 행위는 현행법으로도 민·형사상 면책 대상인데, 불법행위에 대한 기본원칙(부진정 연대책임)에 예외를 두려는 것은 특정 집단을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보고 있다. 실제 고용부가 200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14년간 손해배상 소송을 분석한 결과, 청구액(2753억원)의 99.6%, 인용액(350억1000만원)의 99.9%가 민주노총에 집중됐다. 노란봉투법으로 사실상 민주노총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는 이유다.

文정부 고용부 차관도 “법률 원칙 흔든다”

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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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도 이런 부작용을 우려했다. 지난 2020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박화진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은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손해배상 제한 문제는 신중한 검토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민법상의 손해배상 원칙이나 민사집행법, 신원보증법 문제까지 해당 법률의 원칙을 흔드는 특례 조항들이 많다”고 밝혔다. 현 정부의 입장과 사실상 같다.

노동전문가들 “노란봉투법 거부하더라도 대안 제시해야 ”

노란봉투법은 양곡관리법·간호법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본회의 통과 직후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법안을 막는 데 그쳐선 안 되고, 실제 열악한 하청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원장은 “노란봉투법과 같은 강제적인 방법은 부작용이 많고 왜곡된 소지가 있지만,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며 “상생 협의 플랫폼 등을 마련해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도 “노란봉투법이 담고 있는 노사관계 사각지대 문제, 노동법 보호 대상에서 소외되는 하청 노동자 문제, 가혹한 손해배상 문제 등은 정부가 별도의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법을 대신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찾겠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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