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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오늘도 평화로운 한강공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4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

토요일인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근처 자전거도로 교차로. 샛강 쪽으로 돌아 들어가려는데 한강대교 방향에서 10여대의 자전거가 미친 황소 떼처럼 달려든다. 소위 ‘사이클’이라 불리는 로드 자전거다. 선두의 두어 명이 무어라 소리를 치는데 아마 비키라는 소리 같다.

“야, 이 개××들아!”

앞에서 가던 남성이 사자후를 토한다. 급정거하느라고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헬멧에 고글, 쫄쫄이바지까지 차려입고 떼거리로 달리던(팩 주행이라 부른다) 일행 중 뒤를 따르던 한 남성이 고개를 들고 “뭐, 이~”라고 대거리를 하려다가 그냥 지나간다. 빠른 주행으로 숨이 차서 말을 잇지 못한 듯싶다. 폭풍 같은 순간이 지나고 한강공원 자전거도로에는 다시 평화가 드리운다.

안전속도 무시하는 자전거 폭주족
언제까지 시민 위협 두고 볼 건가

사고 위험이 큰 회전교차로에서는 속도를 줄이는 것이 정상이다. 자동차 도로와 마찬가지로 먼저 진입한 자전거가 있으면 당연히 멈춰야 한다. 게다가 한강 자전거도로의 권장속도는 시속 20㎞ 이하다. 누구라도 다른 시민들에게 위협의 가하며 먼저 지나가겠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게다가 페달링을 멈추는 기색조차 없이 비키라고 소리 지르는 것은 예의도 아니다.

“사십, 사십!!!”

한 시간쯤 뒤 이촌 한강 공원 자전거도로. 앞에 지나는 따릉이를 왼쪽으로 추월하려는 참에 중앙선 넘어 왼쪽으로 질풍이 스친다. 또 다른 팩이다. 중앙선을 넘어 질주하는 모습에 마주 오던 시민들이 깜짝 놀라 속도를 줄인다. 10여대의 행렬 맨 뒤에 따라가던 라이더가 소리를 지른다. 평균 시속 40㎞를 달성했다는 뜻인지, 40㎞를 유지하라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것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듯하다.

나들이 나온 가족과 이른바 ‘샤방 라이딩(자전거를 낮은 속도로 슬슬 타는 것)’을 즐기는 연인 등이 뒤섞여 북적이는 주말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폭주족을 찾아보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지난 9월까지 한강 공원에서 발생한 자전거 안전사고는 471건이다. 주말마다 두 건씩 사고가 난 셈이다. 이중 과속 때문에 발생한 사고가 48.2%로 절반에 육박한다. 집계되지 않은 경미한 사고까지 합치면 자전거를 타는 시민이 한두 번씩 아찔한 경험을 할 확률은 매우 높다.

서울시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자전거도로 곳곳에 ‘20’이라는 안전속도를, 통행이 잦은 횡단보도 근처에는 ‘보행자 우선’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지난 8일에는 종합 개선책을 내놨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CCTV 40개를 뚝섬·이촌·망원 등 한강 공원에 설치해 과속을 단속한다. 보행자 통행이 잦은 횡단보도 반경 100m 이내는 속도를 10㎞로 제한하고 과속방지턱 등을 도입할 방침이다.

이런 처방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AI CCTV로 폭주족을 발견해도 대응책은 “안전속도를 준수하라”는 안내 방송을 하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과속을 단속하거나 처벌할 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측은 “자전거도로 일정 구간에서 시속 20㎞ 이내로 속도를 제한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을 연내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온통 정신이 팔린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관심이나 보일지, 법이 개정돼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설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월 1회 이상 자전거를 이용하는 인구는 134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고 자전거도로가 한산해지면 안전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식을 것이다. 그리고 내년 봄이 되면 똑같은 광경이 되풀이될 것이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보고서 한 줄로 마무리되던 소설(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결말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풍경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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