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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6명 목숨 끊는다"…심리상담 예산 삭감에 심리학회 반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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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정부가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국민 마음건강 투자사업' 예산안을 두고 국회에서 삭감 논쟁이 벌어진 것과 관련, 한국 심리학회가 10일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심리학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 마음 건강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하며, 자살 위기 극복과 국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추진해 온 국민 마음건강투자사업의 예산 삭감 논쟁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매일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새생명이 태어나지 않는다"며 사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했다.

국민 마음건강투자사업은 정부가 전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해 2027년까지 전 국민의 1%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내년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539억원이다. 이를 두고 보건복지위 소속 일부 야당 의원이 사업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예산 삭감을 주장한바 있다.

학회는 국민 마음건강투자사업이 국민의 마음 건강 지원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학회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마음을 돌보는 문제가 시급하다"면서 " 국가사상 초유의 저출생, 세계 최상위 자살률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 사회는, 이제는 마약 중독이라는 국가적 위험이 퍼지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마음 건강 증진을 위한 추가적인 제도 마련도 촉구했다. 학회는 ▶국민 정신건강 문제의 1차적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심리상담 체계 구축 ▶자살자 유가족을 비롯한 심리적 위기에 처한 국민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심리지원 마련 ▶자연재해 및 사회적 재난에 대한 안정적인 트라우마 심리지원 체계 구축 ▶효과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근거기반 심리적 개입’의 제도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심리학회 입장문

한국심리학회는 국민의 마음 건강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하며, 자살 위기 극복과 국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추진해 온 [국민 마음건강투자사업]의 예산 삭감 논쟁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매일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새 생명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미래 희망을 품지 못한 청소년․청년층의 자해와 자살 시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10.29 참사 등 사회적 재난은 끊이지 않고,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에도 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추구권이라는 마땅한 권리를 찾을 길은 없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 과연 국가의 의무가 맞는지 의심하고 분노하는 국민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어 가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설 곳이 없습니다.

한국심리학회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포항 자연재해, 이태원에서 일어난 10.29 참사에 이어, 전세 사기 피해의 현장에까지 구조의 손길을 뻗어,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은 물론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도 심리적 지원을 맡아왔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 상담심리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 등 심리지원 전문가들이 소속되어 있는 민간 학술단체로서, 한국심리학회가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 국민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국민 심리지원을 위한 안정적인 국가 거버넌스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한국심리학회는 지금도 국민의 트라우마 위기 극복을 위한 심리지원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국민의 심리적 어려움과 위기를 전문가들의 사회적 책임감과 이타심, 연대 의식에 기대어 해결해야 할까요.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찾듯이, 마음이 힘들 때 심리검사를 받고 심리상담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국가는 이러한 국민의 필요와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기에,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과 같은 몇 가지 심리상담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은 청년들에게 심리상담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6천 명 치 예산을 준비하면 만 명의 청년들이 신청하고, 만 명 치 예산을 준비하면 1만 2천 명의 청년들이 신청합니다. 이러한 심리지원 사업의 실효성을 참고하여, 이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준비하고 있는 [국민 마음건강투자 사업]은 국민의 마음 건강 지원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시도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 일부 의원이 전문성 없는 판단과 근거 없는 음모론을 들어, [국민 마음건강투자사업]의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마음을 돌보는 문제가 시급합니다.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동안 국가사상 초유의 저출생, 세계 최상위 자살률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 사회는, 이제는 마약 중독이라는 국가적 위험이 퍼지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에 한국심리학회는 [국민 마음건강투자 사업]의 예산 삭감 시도를 강력히 규탄하며, 다음과 같은 국가의 국민 마음 건강 증진을 위한 제도 마련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 국민 정신건강 문제의 1차적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심리상담 체계 구축
▶ 자살자 유가족을 비롯한 심리적 위기에 처한 국민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심리지원 마련
▶ 자연재해 및 사회적 재난에 대한 안정적인 트라우마 심리지원 체계 구축
▶ 효과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근거기반 심리적 개입’의 제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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