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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소양강댐 50년과 남북 ‘워터 데탕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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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중열 물복지연구소 소장

이중열 물복지연구소 소장

1973년 10월 15일에 준공된 소양강댐이 올해로 건설 50주년을 맞이했다.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 서울지하철 건설은 빈곤 퇴치, 경제성장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3대 국책사업 중 하나였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5년 단위로 추진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이들 국책 사업에는 국가 예산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321억원이 투입됐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들여온 대일청구권 자금이 여기에 활용됐다.

소양강댐은 1960년대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꼭 갖춰야 할 사회기반시설(SOC)이었다. 홍수 조절, 용수 공급, 수력 발전 등 다목적댐으로 건설된 소양강댐은 길이 530m, 높이 123m로 총저수용량은 29억㎥ 규모다. 제대로 된 장비도 넉넉한 자본도 부족한 상황에서 어렵사리 건설한 소양강댐은 이수(利水)와 치수(治水)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소양강댐이 없었다면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 일궈낸 소양강댐
남북 대치로 대형댐 신설 난망
북한강 활용해 윈윈 해법 찾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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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댐이 수도권 지역에 공급하는 생활·공업·농업 용수는 하루 평균 332만t이다. 1100만 명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수도권에 공급되는 용수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연간 353G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댐 건설 당시 공사 현장 근로자들을 허기를 채워주던 닭갈비와 막국수는 이제 강원도 춘천을 대표하는 전국구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소양강댐은 호반의 도시 춘천을 상징하며 연간 18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소양강댐이지만 빛만 남긴 것은 아니다. 춘천시 북산면과 동면, 양구군 양구읍과 남면, 인제군 남면 등 6개면 38개동과 리 일대 817만평의 광범위한 지역이 수몰됐다. 이 지역 주민 4600세대가 수몰되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대규모 토목사업에는 자연환경 훼손과 희생이 뒤따르기 쉽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는 국가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소양강댐 이후에는 국토 전체의 이수와 치수에 도움이 될 정책 결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들어설 삼성전자 공장은 하루 65만t의 산업 용수가, SK하이닉스는 하루 27만5000t(향후에는 57만t)이 필요하다. 하지만 환경부는 “팔당댐 자체에 여유 수량이 많지 않아 취수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팔당댐을 통한 용수 공급이 어려워지자 여주보 취수로 계획을 변경했다가 지자체와 갈등으로 1년 6개월간 사업이 지연됐다.

하수처리 재이용 수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대유량 취수원은 한강 수계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영월댐과 임진강댐은 사회적 합의 불발로 무산됐다. 물 사용량은 앞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이지만, 이에 대비한 항구적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물 공급은 국가의 기본 의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그린 데탕트(녹색 화해 협력)’ 정책 중 금강산댐(저수량 26억t)과 평화의댐(26억t)을 활용한 ‘워터 데탕트(Water detente)’ 실현이 절실하다. 남북이 북한강 수계의 관리와 보전을 통해 가뭄과 홍수 등 재난을 관리하고, 공유하천 관리로 발생하는 이익을 나누는 윈윈 정책이 필요하다.

금강산댐을 우리 돈으로 리뉴얼하고 제대로 된 발전 설비와 송·배전 인프라를 갖추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북한은 전력 갈증을 일부라도 줄일 수 있고, 한국은 풍부한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신규 댐은 건설하지 않아도 되고, 약 30억t 이상의 용수를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강 수계 댐(임남댐~팔당댐 표고 차 240m) 5개 소에서 발전을 통해 연간 10.3억㎾h의 친환경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연중 균일한 방류로 북한강 수계의 수질을 대폭 향상할 수 있다.

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물을 활용해 경색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위대한 결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듯이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물로써 물길을 여는 남북 ‘워터 데탕트’ 결단을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중열 물복지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