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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메가 서울’이냐 ‘콤팩트 수도권’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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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헨리 포드가 1500만대 이상 팔렸던 자동차 모델 T를 처음 출시했던 것은 1908년이었다. 당시 미국 일반 노동자의 월급 2개월치로 살 수 있었던 T는 자동차 대중화를 앞당겼고, 도시의 교외화를 촉진했다. 수천년간 도보권 크기의 도시 안에 살았던 인류는 포드 덕분에 반경 수십㎞가 넘는 거대도시에서 살 수 있게 됐다.

1960년대 초 프랑스 지리학자 장 고트망은 미국 동부 보스턴-뉴욕-워싱턴 DC를 잇는 축에 당시 미국 인구의 5분의 1이 모여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 벨트를 ‘메갈로폴리스’라고 명명했다. 그가 미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이끈 인큐베이터라고 평가했던 이런 거대도시 지역은 이제 전 세계에 여러 개가 형성됐다.

수도권 인구, 한국 전체의 50%
몸집 키운 ‘메가 서울’ 비효율적
구역 확대보다 기능 집중 필요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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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울·인천·경기를 합친 수도권도 인구가 2600여 만명으로 불어나 세계적으로도 큰 메갈로폴리스가 됐다. 지난해 전 세계에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30개를 넘어섰지만, 도시 크기로 영향력과 위상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지난 세기 동안 수도권 집중이 심해진 나라도 많다. 일본은 30% 안팎, 영국과 프랑스는 20% 정도인 데 한국은 2019년 11월 처음 50%를 넘었다. 인구 5000만 이상 국가 중에서 수도권에 인구의 과반이 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수도권 집중이 심한 국가에서 지방 도시들이 연합해 ‘메가시티’를 만들자는 시도도 있다. 일본의 간사이(關西) 광역연합, 영국의 광역 맨체스터, 한국의 부·울·경 메가시티 등이 그런 사례다. 행정구역 확대보다 효율을 높이고, 기능 집중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꾀하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수십년간 수도권 집중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우자는 주장과 국토를 균형발전 시키자는 주장이 맞서왔다.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중앙정부는 대체로 균형발전에 방점을 둔 정책을 추진해왔다. 행정수도, 기업도시, 5+2 광역경제권 등이 그렇게 나왔다. 지방선거 때는 서울·경기·인천을 합쳐서 운영하자는 2006년 당시 김문수 후보의 ‘대수도론’, 서울과 경기를 합치자는 2018년 남경필 후보의 ‘광역 서울도’ 같은 제안이 나왔지만 두 주장은 첫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제기된 ‘메가 서울론’은 기초지자체별로 서울과 통합을 시도하자는 것이어서 광역 연합을 제안했던 기존 두 주장과는 다르다. 기능의 집중과 효율 제고가 아니라 단순한 서울 편입만을 노린 것이라면 격이 떨어진다.

2008년 총선 때의 서울 뉴타운 공약과 비교해야 할 것 같은데, 당시 이슈는 강남·북 균형발전이었다. 뉴타운은 소규모 재개발 대신 광역 재개발을 유도해 학교·공원 등 생활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자는 생각이었다. 원래대로 몇 군데만 시도했다면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결국 총선 공약에 태워지면서 강남·북 균형은 땅값의 균형으로 변질했고, 뉴타운 광풍이 불었다.

지난 세월 추진해온 지역균형발전 결과를 볼 때 전략의 일부 수정은 불가피하지만, 우리가 수도권의 몸집을 키운다고 경쟁력이 올라갈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개발 등 기능을 집중하면서 도시는 콤팩트하고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메가시티의 본질이다.

통행량 때문에 통합이 필요하다면, 맨해튼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뉴저지 주 도시들은 이미 뉴욕시에 편입됐어야 한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서울의 5분의 1도 안 되는 파리시를 15분 도시로 더 콤팩트하게 만들려는 시도도 포기하는 게 맞는다. 행정구역은 그대로 두거나 좁히면서도 인근 지자체끼리 연합해 교통·쓰레기 등 각종 현안을 해결하고, 이용률이 낮은 토지의 효율을 살려 콤팩트 도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도시 관리비용도 절감하면서 시민 만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요, 영향력 있는 메가시티가 되는 길이다.

서울은 이미 충분히 메가 도시로 성장했다. 지난 세월 동안 난개발된 수도권을 더 콤팩트하게 정비하고, 잘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 김포는 인근의 마곡 산단과 고양 테크노밸리 등과 연계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추진할 곳이다. 세계와 한국을 이끌어갈 수 있는 도시들이 또 광풍에 휩쓸릴 것 같아 안타깝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