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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비장의 '기습 퇴장' 작전…野 '이동관·검사 탄핵'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8석 더불어민주당이 9일 또다시 탄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취임 76일째인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수사 지휘를 맡은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등 3명이 표적이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9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에 탄핵안 보고되자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9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에 탄핵안 보고되자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멈춰섰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기각)과 임성근 판사(각하) 탄핵안과는 달리, 이번엔 국회 안에서 제동이 걸렸다. 국민의힘이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등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전격적으로 철회하며 본회의가 하루 만에 끝나게 돼서다. 국회법상 본회의 보고 후 24~72시간 이내에 하게 돼 있는 탄핵안 표결이 사실상 불발된 것이다.

본회의 전까지 민주당은 일사천리였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1시 20분쯤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었다. 비슷한 시각에 이 위원장과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안 5건을 국회 의안과에 접수했다. 의총에선 “너무 지나치면 비판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이 위원장과 검사 2명 탄핵안만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 원내관계자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고 24시간이 지나는 내일(10일) 오후 3시쯤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하고 노란봉투법과 함께 탄핵안 표결을 진행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제55주년 대한민국헌정회 창립기념식에서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제55주년 대한민국헌정회 창립기념식에서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김기현 대표는 “대선 패배 이후 걸핏하면 나오는 탄핵 주장에 넌덜머리 날 지경”이라며 “임명 석 달도 안 된 이 위원장에 근거 없는 탄핵을 주장하니, 민주당 머릿속에는 오로지 탄핵과 정쟁만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당이 습관적으로 가벼이 ‘탄핵’을 꺼내 들수록 헌정사의 새로운 오점은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의석수가 112석에 불과한 국민의힘이 탄핵안을 부결시킬 방법은 없었다.

상황이 급변한 건 본회의가 열린 직후였다. 탄핵안이 보고되고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이 상정된 직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대신 조용히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회의 전까지 함구했던 ‘집단 퇴장’ 전략을 펼친 것이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을 15분 만에 줄줄이 처리한 대신, 10일 본회의가 열리지 않게 되면서 탄핵안을 표결할 기회를 잃었다.

민주당은 부랴부랴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내일(10일) 본회의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으나, 김 의장은 “양당 간 협의를 했으면 좋겠다”며 사실상 개최를 거부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도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겠다는 악의적이고 정치적인 의도를 묵과할 수 없었다”며 “방통위원장을 탄핵해 국가기관인 방통위 기능을 장시간 무력화시키겠다는 나쁜 정치적 의도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국가기관 기능 정지 사태를 막기 위해 윤 원내대표가 오늘 아침 고심 끝에 (필리버스터 포기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등이 9일 오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을 표결하기 전 본회의장 밖에서 논의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등이 9일 오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을 표결하기 전 본회의장 밖에서 논의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앞서 민주당은 이동관 위원장 탄핵과 관련해 이 위원장이 방통위를 2인 체제로 운영한 게 방통위법 위반이고,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팩트체크 시스템을 점검하겠다며 KBS·MBC 등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게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해임하고 그 자리에 후임 이사를 임명한 게 법 위반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무리한 행위를 했다고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보긴 어렵다”라며 “공직 수행 정지가 목적이라면, 이는 탄핵의 본질을 정치 공세 수단으로 오남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국회 탄핵 통과 이후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이 나는 데 167일 걸렸다.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도 “어차피 이 위원장도 이 장관처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게 뻔한데, 5개월가량 이 위원장 업무를 막아 민주당에게 유리한 현재 공영 방송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르겠다는 의도 아니겠냐”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떤 위반 행위도 없는데, (민주당이) 숫자를 앞세워서 탄핵한다면 민심의 탄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가짜뉴스 단속’ 업무가 탄핵 사유에 포함된 점을 집어 “가짜뉴스 단속이 본인들의 선거운동에 방해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검찰도 민주당이 제시한 ‘고발사주’ 의혹(손준성 차장검사),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이정섭 차장검사) 같은 검사 탄핵 사유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단계이거나 재판절차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사안으로 탄핵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과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안을 재차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2차 의원총회 후 브리핑을 통해 “탄핵안을 철회하면 일사부재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틀 연속 본회의가 열리는 시점에 다시 탄핵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이틀 연속 본회의 개최일은 11월30일~12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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