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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邦有道不廢(방유도불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는 제자 남용(南容)을 신뢰하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버림받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형벌이나 죽임을 당하는 것을 면할 사람이다”고 칭찬하면서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논어』 공야장편 제2장에 나오는 얘기다. 도가 있는 나라, 즉 정치가 바르게 행해지는 나라에서는 관직에 발탁되는 게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무도한 나라에서는 기용되는 게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이다. 무도한 나라에서도 형벌과 죽임을 면한다면 현명한 사람이다.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邦:나라 방, 道:길 도, 廢:폐할(버릴) 폐.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버려지지 않으면.... 24x63㎝.

邦:나라 방, 道:길 도, 廢:폐할(버릴) 폐.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버려지지 않으면.... 24x63㎝.

요즈음 우리 정치는 과연 도가 있는 정치일까. 장·차관들은 다 자랑스럽게 발탁된 능력자일까.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쓴 사람은 없을까. 거짓말과 막말 싸움이 난무하는 정치현실을 보면 우리 정치판에는 기용할 만한 인재도, 자리를 피하는 현자도 없는 것 같다. 정의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하고, 국가와 민족과 애국애족의 의미를 보는 가치관이 요동치다 보니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가치관의 혼란이 심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오히려 비웃고, 오로지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만 내달리는 것 같다.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경제발전과 이익창출도 필요하지만 ‘도(道)’, 즉 바른길을 세우는 일이 더 시급하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