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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200) 길림추(吉林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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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길림추(吉林秋)
안확(1886∼1946)

강파(江波)에 바람 치니, 밝은 달이 구으른다
단풍이 서두르니, 도처마다 낙엽이라
만 리에 객의 수심이, 새로 수선하고나
-자산시선(自山詩選)

시조로 편 독립운동

일제강점기에 『조선문명사』 『조선문학사』 『조선문법』 등을 저술한 독립운동가 자산 안확(安廓)의 시조다. 안확은 고종의 해외 망명 유치 계획에 관여하고, 3·1운동 당시 마산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1930년대 들어 일본의 식민지배가 무단통치로 바뀌어 학문적 탐구가 어렵게 되자 국내를 벗어나 만주와 중국, 노령의 연해주 지역과 하와이를 유랑하였다.

바람이 강의 수면을 치니 물결이 일고, 밝은 달이 굴러간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나무들은 서둘러 단풍을 떨어뜨리니 도처에 낙엽이다. 수난의 고국을 떠나 어언 만 리, 나그네의 수심이 새록새록 쌓인다.

안자산은 7년 동안의 유랑을 마치고 귀국해 어학과 고구려 문학, 시조·향가·미술사 등에 관한 글을 발표하였다. 일본어 쓰기를 강요하던 1940년 이후에는 아예 붓을 꺾었다. 그는 240수에 이르는 시조 작품과 이론을 발표했으니 거의 독립운동 수준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이런 선열들의 피땀 위에 서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