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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산업용 대용량만 10.6원↑…'빚더미' 한전 정상화 먼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올해 4분기 전기요금이 산업용(대용량)에서만 ㎾h당 10.6원 인상된다. 주택용·일반용 요금 등은 동결이다. 한국전력은 인력 감축과 자산·지분 매각 등을 담은 추가 자구안도 마련했다. '절반의 요금 인상'으로 빚더미 한전의 숨통이 일부 트였지만, 경영 정상화까진 여전히 갈 길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8일 이러한 내용의 전기료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자구 대책 준비, 관계부처 협의 등을 이유로 한 달 넘게 미뤄지다 결론이 났다. 고물가·고금리와 경기 침체 영향이 큰 일반 가구, 자영업자 등에 적용되는 전기료는 그대로 두고 산업용 요금에만 손대는 게 골자다.

산업용에서도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40만호) 요금은 동결했다. 대기업 등 대용량 수요자 중심인 산업용(을)(4만2000호)의 전력량요금만 9일부터 ㎾h당 평균 10.6원(6.9%) 인상된다. 이들의 월평균 요금은 6300만원(지난해 기준) 수준인데, 한 달에 431만원을 추가 부담하는 식이다. 또한 산업용(을)에서도 시설 규모가 큰 사업장 요금을 상대적으로 더 올렸다.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48.9%)을 차지하는 데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있는 산업용(을) 고객 요금만 선별적으로 올리는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조정을 두고 원가 상승 요인을 반영하되 물가, 서민경제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에너지업계에선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생과 직결된 전기료가 크게 오르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주택용·일반용은 지난 3분기에 이어 또 동결이다. 향후 국제 연료 가격, 환율 추이 등을 보면서 조정을 검토할 계획이다.

그나마 산업용 대용량 요금이라도 올린 데엔 2021년 이후 누적 적자 47조원, 올 상반기 기준 부채 201조원인 한전의 재무 부담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또한 값싼 전기료는 미국의 철강 상계관세 부과에서 보듯 통상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전기료는 여전히 원가에 못 미치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한전은 요금 조정 없이 안정적 재무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주택 외벽에 전력량계가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주택 외벽에 전력량계가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올해 4000억원 재무 개선이지만…연간 인상 목표치 못 미쳐 

한전에 따르면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올해 4000억원, 내년 2조8000억원의 재무 개선 효과를 볼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수십조 규모의 묵은 영업손실을 털어내긴 역부족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4분기 (㎾h당) 25.9원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사용량 절반에만 매겨지는 이번 인상 폭을 4분기 전체 전기료에 대입해보면 한 자릿수인 5원 안팎 올린 것에 불과하다. 당초 산업부는 올해 전기료를 ㎾h당 51.6원 올려야 2026년까지 한전 적자 해소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4분기까지 실제 인상분은 26원 남짓으로 사실상 목표의 절반에 그친 셈이다.

증권가에선 곧 발표될 3분기 한전 실적이 흑자 전환할 거라 예상하지만, 4분기는 다시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대외 변수가 많아 겨울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거란 우려가 여전하다. 내년 1·2분기 전기료는 총선을 앞둔 만큼 더 올리기 어렵다. 누적된 적자를 해소하지 못하면 내년 한전채 한도가 줄어들면서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도 사실상 막히게 된다. 주택용 요금이 제자리걸음하면서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에너지 절약 필요성이 줄어들 거란 지적도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차라리 전기료 전체 동결이나 대폭 인상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어정쩡한 조정으로 물가 안정·한전 경영 개선·에너지 절약이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판이다. 한전채 발행에만 약간 숨통이 트였을 뿐 한전 정상화 시점은 훨씬 늦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인력 감축 등 추가 자구책도 발표…가스요금은 동결

이날 전기료 조정에 맞춰 한전은 추가적인 고강도 자구책도 내놨다. 앞서 정부가 요금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제시한 만큼 전방위적인 경영 혁신에 나선 것이다. 우선 2001년 발전사 분사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 8본부 36처인 본사 조직을 20%(2본부 7처) 줄인다. 약 2000명 안팎의 인력 효율화에도 박차를 가한다. 운영인력 1200명가량을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줄이는 한편, 향후 필요한 800명 규모의 추가 인력 소요도 별도 증원 없이 자체 해소키로 했다. 추가 인력 감축을 위한 희망퇴직도 받는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원은 2직급 이상 임직원의 내년도 임금 인상 반납액을 활용할 계획이다.

자산 매각에도 속도가 붙는다. 서울 공릉동의 '알짜' 자산이자 인력 교육 요람이란 상징성이 큰 인재개발원을 매물로 내놓는다. 부지 용도 변경 후 매각할 경우 약 7800억원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전의 전산 시스템 업무를 사실상 독점 담당하는 자회사 한전KDN 지분도 일부 정리한다. 증시 상장 이후 보유지분 100% 중 20%(1300억원 상당)를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지분율 51%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추가 매각 가능성도 열어놨다. 약 500억원에 달하는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 사업 지분 38%도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한전 관계자는 "자산 매각을 통해 약 1조원 정도의 현금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편 가스요금은 이번에 동결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난해 이후 5차례에 걸쳐 인상된 점, 겨울철 난방비 부담 확대 등을 고려한 결정이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가스공사 미수금, 재무구조 등을 면밀히 보면서 향후 인상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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