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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반 유대" 독일 극우정당, 갑자기 중국 편드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자가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자가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기존 정치권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한 기성 정당과 달리 입장표명을 최대한 자제 중이다. 또한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독일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노골적인 친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지세력과 자금줄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리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독일은 지난달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다. 유럽 등 서방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비판하며 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 편에 굳건히 서 있다”며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고 있다. 과거 나치 정권 하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dpa 통신은 “홀로코스트를 계기로 독일 정치인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안전에 독일이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설명했다.

獨정치권 “이스라엘 지지”에도 나홀로 “반 유대”

지난달 2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서 시위자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서 시위자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AfD의 입장은 독일 주류 정치권과 온도 차가 크다. 독일 내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의 과격함을 비판하면서도, 지난달 베를린 유대교 회당 화염병 투척 사건 등 유대인을 겨냥한 폭력과 위협 행위에 대해선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AfD의 침묵엔 주요 지지층인 백인 우월주의 세력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반유대주의를 내세우며 나치를 추종하는 목소리를 거세게 높이는 것과 관련이 깊다. 독일 시민사회관측소 리아스에 따르면 지난달 7∼15일 독일에서 벌어진 반유대주의 사건은 전년 동기 대비 240% 급증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지난 2013년 백인우월주의와 난민 반대, 반(反)EU를 내세우며 창당한 AfD로선 최근 반유대주의 기류 강화가 지지율 반등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8일 서부 헤센주와 남부 바이에른주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AfD는 각각 18.4%, 14.6%의 득표율로 2위와 3위를 기록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구동독 지역이 지지기반인 AfD가 서독 지역에서 선전한 것이다.

같은 달 20일 독일 공영방송 ZDF가 발표한 정당별 지지율에서도 AfD는 21%로 2위를 기록했다. 연립정부인 집권 사회민주당(15%), 녹색당(14%), 자유민주당(5%)을 훨씬 앞섰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번 전쟁은 독일내 급증하던 반유대주의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며 “AfD 부상은 이런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중→친중 급선회, 현 정부 압박

독일 뉴스매체 티온라인은 지난달 막시밀리안 크라(사진) 유럽의회 의원을 비롯한 독일 극우정당 AfD 소속 정치인들이 중국으로부터 정치적 자금 지원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사진 티온라인 캡처

독일 뉴스매체 티온라인은 지난달 막시밀리안 크라(사진) 유럽의회 의원을 비롯한 독일 극우정당 AfD 소속 정치인들이 중국으로부터 정치적 자금 지원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사진 티온라인 캡처

AfD는 과거 정치적으로 ‘상극’에 가까웠던 중국 공산당과 밀착 행보도 보이고 있다. 유럽 내 극우 정당들은 전반적으로 중국에 강경노선을 취해 왔다. AfD도 올해 초까지 ‘중국 때리기’에 힘썼다. 독일 정부에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박탈할 것을 촉구하고, 중국의 경제 스파이 행위를 비난했다. 중국 해운 대기업 코스코의 함부르크 항만 터미널 지분 매입 시도를 금지할 것도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알리체 바이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중국 베이징·상하이 등을 방문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AfD는 최근 독일 연방의회에서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무장관과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이 무모한 중국 견제를 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독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을 벌이는 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중국 IT업체 화웨이와 ZTE가 만든 부품을 독일의 5세대(5G) 통신 네트워크에서 사용하지 못 하게 하려는 정부 계획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AfD의 ‘친중 급선회’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독일 매체 티온라인은 “막시밀리안 크라 유럽의회 의원 등 AfD 유력 정치인들이 자금 지원 등을 받으며 중국 정부와 광범위한 친중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중국 정부는 유럽 내 영향력을 키우고 중국 인권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럽 극우 정당들에 지속해서 돈을 쏟아부어 왔다”고 전했다.

반중 행보를 보이는 집권당을 공격해 국내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심산이란 분석도 있다. 볼프강 슈뢰더 카셀대 정치학과 교수는 “AfD의 이례적 외교적 입장은 다른 독일 정당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달라진 국제 정세를 반영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FP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인식을 가진 중·동부 유럽 극우정당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를 지원해온 중국을 우군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AfD의 ‘마이 웨이’ 행보는 향후 지지율 급등 여부에 따라 독일 정치권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미 외교매체 디플로맷은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에서 집권을 위해 AfD의 노선을 반영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극우세력의 부상은 향후 독일 정치의 패러다임 변화를 낳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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