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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다 들리는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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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부 기자

김호정 문화부 기자

베이스 연광철(사진)이 최고로 꼽는 노래는 ‘그대 있음에’다.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김남조 시인, 김순애 작곡가다. 연광철의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모든 가사가 다 들리네?’ 그동안 성악가들의 독일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에 러시아어, 때로는 체코어까지 이해해보려다 지쳐왔던 한국 청중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진다.

더 중요한 점은 그동안의 어떤 한국 가곡보다 한국어가 잘 들린다는 것이다. 연구하고 불렀기 때문이다. 연광철은 “관사가 있는 서양 언어는 뒤쪽에 음악의 강세가 있지만 한국어는 앞음절에 강세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서양식으로 뒷음절에 강박을 둔 한국 노래가 많다. 대표적으로 애국가. ‘동해물과’가 ‘해물’로 들린다. 연광철은 그러지 않기 위해 시를 먼저 보고 거기에 노래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붙여 불렀다. ‘그대 있음에’는 본래부터 자연스럽게 작곡됐기 때문에 연광철의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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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터치는 힘 빼기다. 연광철은 성악가들의 소리 자랑을 경계한다. 어디까지나 텍스트에 봉사하기 위해 소리를 낼 뿐, 꽥 질러서 성량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00인조쯤 되는 유럽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고 30년간 오페라를 불러온 그가 한국 가곡 앞에서는 한숨을 고른다. ‘그대 있음에’에서 반복되는 구절 ‘그리움이여’를 들어보라. 클라이맥스지만 가장 작고 여린 소리다. 자연히 귀 기울이게 된다. 그동안 베를린·뉴욕·런던·밀라노의 모든 극장에서 노래한 연광철이 한국 가곡을 골라 부른 음반이 이달 3일 나왔다. 공연은 다음 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