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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그런데 홍범도가 누구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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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근래 들어 한국 대통령은 세계 어디에서도 인기다. 튼튼한 경제력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쟁력 있는 한국 기업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원동력이 된 1960~70년대 고도성장은 부인할 수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다. 출발점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그 경제개발 계획을 탄생시킨 것은 우남(雩南) 이승만 정부였다. 1957년 부흥부 장관이 된 송인상은 이 대통령에게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개발 계획을 실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우남은 “그건 공산당, 사회주의자가 하는 짓”이라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송인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에 출장가서 전후 경제개발 이론의 선구자인 아서 루이스의 저서를 구했고, 우남에게 전달했다. 루이스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루시아 출신의 흑인 경제학자로 런던정경대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냈고, 197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우남은 밤을 새워 통독한 뒤 “자네가 하려는 거 해 봐”라고 지시했다.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비사(祕史)는 한 원로가 생전의 송인상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다.

대통령, 전투 모드서 협치 모드로
경제·안보 위기에 필요한 리더십
이견 봉쇄 위한 이념 전쟁은 금물
스타일 넘어 철학·기조 바뀌어야

 송인상은 “5년은 너무 길다”는 우남의 뜻에 따라 3개년 계획안을 마련해 60년 4월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원래 미국은 농업에 집중하라고 권고했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공업화 성장 모델을 채택했다. 자원이 없는 최빈국(最貧國)이 살길은 수출 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경제개발 모델의 원형은 이때 축조된 것이다.

 3개년 계획은 60년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이 출범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수정돼 계승됐고,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실행했다.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됐다. 지금의 정권들처럼 전 정부의 흠결을 들쑤시면서 적폐청산에 나섰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 확 달라졌다. 전투 모드에서 협치 모드로 전환했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사라졌다. 야당에 협력과 협조를 부탁한다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했다. 외면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했고, 야당 국회상임위원장들의 쓴소리도 묵묵히 경청했다. 이런 통합적 자세는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다.

 이젠 스타일을 넘어 국정 운영의 철학과 기조도 달라져야 한다. 백해무익한 이념전쟁과 결별해야 한다. 먹고사는 실용을 중시하는 중도는 물론 합리적 보수층도 넌더리를 내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했다.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지 않나. 제일 중요한 건 이념”이라며 전투를 독려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적대세력을 향해 위협적 언사를 쏟아내는 것은 아무런 적의(敵意)가 없는 무생물인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무모한 용맹을 떠오르게 한다. 강성 지지층은 환호하겠지만 공동체는 경직과 분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는 이념전쟁은 이견(異見)을 봉쇄한다. 갈등의 현재화(顯在化)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를 위태롭게 한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시장을 존중할 때에만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최악의 이념전쟁 장면은 홍범도 장군을 사회주의자로 낙인찍은 사건이다. 반공보수인 박정희 정부가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박근혜 정부가 해군함정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하지 않았는가. 이름 없는 어느 자영업자는 “그런데 홍범도가 누구예요?”라고 일갈했다. 서민들은 먹고살기도 바쁜데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의 영웅을 욕보일 정도로 이 정권이 한가하냐는 항변이었다. 민심(民心)은 언제나 천심(天心)이다.

 우남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할 정도로 침략세력인 공산당과 사회주의자를 미워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 전쟁”(윌리엄 스툭 조지아대 석좌교수)에서 나라를 지켜낸 거인(巨人)이었다. 그러나 80대 노(老)대통령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두 갈래길 앞에서 목숨이나 다름없는 소신을 바꿨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강한 영향을 받은 수정자본주의의 산물인 경제개발 계획 수립을 승인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미워한 적의 방식을 용인했다. 이런 유연한 사고야말로 역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는 최고 지도자의 덕목이다. 윤 대통령의 결핍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윤 대통령의 혁신 드라이브와 협치 모드로의 전환을 환영한다. 작은 승리에 도취해 있는 민주당보다는 한 수 위다. 그러나 우남과 같은 유연함과 균형을 갖추지 않는다면 스타일 변화의 약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글 = 이하경 대기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