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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엔 '이스라엘' 없다…'反유대 게시물' 검열 않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의 온라인 지도에 '이스라엘'이란 국가명이 표기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지도 상에선 이스라엘 영토의 영역과 주요 도시명은 나타나 있지만, 국가명은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국명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 이후 삭제된 것인지, 원래 없었던 것인진 불분명하다. 바이두 측 관계자는 CNN에 "공간이 제한된 경우 우리 지도엔 일부 영토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이두의 해명과는 달리 해당 지도엔 주요국들은 물론 룩셈부르크 등 이스라엘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국가의 이름도 표기돼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7년 만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7년 만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중재자' 자처하지만…'반유대' 여론 방치

서방 언론은 중국이 고의적으로 이스라엘의 국명을 누락했거나 삭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중국에서 반(反)유대 정서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전쟁 발발 후 겉으론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휴전을 촉구하며 '중동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다.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서는 중동에 특사를 급파하는 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선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하마스를 지지하는 온라인 게시물이 번지고, 관영 매체와 학자들까지 이런 분위기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각종 글들과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지만, 이러한 게시물들은 철저한 검열 시스템을 갖춘 중국 당국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중국의 '진짜 속내'가 온라인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국가명이 표기되지 않은 바이두 지도의 일부분.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은 국기 그림과 함께 국가명이 표기돼 있다. 사진 바이두 지도 캡처

이스라엘의 국가명이 표기되지 않은 바이두 지도의 일부분.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은 국기 그림과 함께 국가명이 표기돼 있다. 사진 바이두 지도 캡처

中서 하마스 지지, 이스라엘 비난 확산 

텔레그래프·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중국의 한 유명 인플루언서는 웨이보에서 이스라엘을 습격한 하마스를 '저항조직'이라고 옹호한 반면 가자지구를 공습한 이스라엘은 '테러조직'으로 지칭했다. 팔로워가 100만 명인 또 다른 인플루언서는 "하마스는 여전히 너무 순하다"며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중국 당국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관영 매체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최근 사설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해 분쟁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고, 관영 글로벌타임스의 전 편집장 후시진도 소셜미디어에 "이스라엘이 태양계에서 지구를 쓸어버릴까 걱정된다"고 썼다. 중국 푸단대의 션이 국제관계학 교수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나치의 침략 행위에 빗대기도 했다.

반(反)이스라엘 정서가 온라인 여론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달 13일엔 베이징 주재 이스라엘 외교관 가족이 흉기에 피습 당해 다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정치권에선 "중국의 대표적 동영상 앱인 틱톡이 반유대주의 영상을 퍼뜨리는 선동 도구가 되고 있다"며 퇴출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앞. AP=연합뉴스

베이징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앞. AP=연합뉴스

반미 감정에 팔레스타인 지지 역사  

외신은 중국 내 이런 현상을 두고 반미 감정과 중국의 오랜 팔레스타인 지지 역사의 영향이란 분석을 내놨다.

중국은 1992년 이스라엘과 수교 이후 경제적 교류를 확대해왔지만 정치적으론 이스라엘과 거리를 둬왔다. 특히 미·중 경쟁 구도가 가속화하면서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국이 미국이란 점이 부각됐고, 이에 따른 반미 감정은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중국 매체들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 정치권에 유대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거나 "유대인들이 미국의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는 등의 표현을 반복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밀착 관계를 부각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투비아 게링은 텔레그래프에 "중국 내엔 '이스라엘은 서방이 전쟁을 선동하고 중동에 대한 패권 유지를 위해 배치한 전초기지'란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또 유대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으며 탄압하는 중국 내 상황도 반유대 정서 확산의 또 다른 원인으로 제시했다.

반면 중국은 1960년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부터 '민족 해방운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에 무기를 보내왔다.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에 대해선 서방 제국주의의 거점으로 비유했다.

특히 1988년엔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며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9일엔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지지하는 '두 국가 방안'이 이번 전쟁의 해법"이라고 강조했고, 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자 이스라엘을 향해 휴전을 촉구하면서도 기습 공격을 가한 하마스에 대한 비난을 최소화하고 있다.

자이쥔 중국 중동특사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UAE에서 칼리파 샤힌 UAE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자이쥔 중국 중동특사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UAE에서 칼리파 샤힌 UAE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전쟁 중재' 中, 경제·외교 이해득실 계산했나  

이 때문에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공식적으로는 '중재자'를 자처하면서도, 사실상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배경은 중국의 경제·외교적 이해득실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텔레그래프는 "중국 검열 당국이 온라인상에서 반유대주의 내용들을 막지 않는 것은 중국 정부가 이번 전쟁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라며 "특히 이슬람협력기구의 회원국은 57개국으로,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꾀하는 중국은 이스라엘보단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외신들은 중국의 자이쥔 중동특사가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요르단 등 중동 국가들을 잇따라 방문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논의한 배경 역시 전쟁을 통한 주도권 변화 국면에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아랍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최대화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원유의 절반 가량을 중동에 의존할 정도로 중동은 중국의 경제·안보에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의 핵심 외교 노선으로 꼽히는 일대일로(一带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 정책에서도 중동 국가들은 핵심 인프라 사업 등을 통해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핵심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 BBC는 "중국은 중동 나라들로부터의 석유 수입과 사업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전쟁 중재에 개입하고 있다"며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 중국이 이번 전쟁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평판을 높일 기회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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