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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약속' 세게 해서 아프다"…추석 응급실 45% 이런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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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손가락 통증을 호소하며 25세 남성이 지역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을 찾았다. 추석 이튿날인 지난 9월 30일 오후 5시쯤의 일이다. 환자는 가족들과 새우를 까먹다가 새우 가시에 세 번째 손가락 첫 번째 마디 끝 부위를 찔렸다고 한다. 손가락이 붓거나 상처 부위에 열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환자는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환자는 굳이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에 올 정도로 급박한 환자는 아니었다. 병원 관계자는 “육안상 상처가 없고 새우 가시도 없었다. X선 촬영 후 가시가 없는 것을 영상으로 환자에게 확인시킨 뒤 연고와 진통제를 처방했다”고 말했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 중 가장 낮은 5등급(비응급)에 해당했다. 퇴원하기까지 그가 응급실에 체류한 시간은 2시간 23분(143분)이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큰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 절반 가까이는 이 남성처럼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9.28~10.3) 동안 전국 58곳의 권역응급의료센터·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5만8941명·하루 평균 9824명) 중 증상이 경미하거나 응급한 상태가 아닌(KTAS 4·5등급) 경증 환자는 44.9%였다. 이들이 응급실을 찾은 이유는 찰과상과 타박상 등 얕은 손상이 가장 많았고, 감기·염좌·두드러기·장염 순이었다.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지난 10월 2일 오후 10시쯤엔 또 다른 남성(21)이 역시 손가락 통증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에 왔다. 그는 “친구와 새끼손가락으로 ‘약속’을 세게 한 뒤 아프기 시작했다”고 했다. 의료진이 통증 점수(0~10점)로 표현해보라 했더니 5점이라고 답했고, X선 촬영에서 골절은 없었다. 그는 진통제 처방을 받고 손가락에 부목을 한 뒤 한 시간 만에 귀가했다. 그가 치료받을 때 옆에선 심정지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한국 대형병원 응급실의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많은 병원이 쉬는 추석 연휴 기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연휴 기간에 경증 환자가 진료를 볼 수 있는 작은 병원 응급실 등 4000여곳의 병·의원과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 200여 곳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큰 병원을 찾은 것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그 이유를 ▶주변의 이용 가능한 병원을 찾기에 정보가 부족했거나 ▶환자가 중증도를 잘 모르거나 ▶가까운 병원이 대형병원 응급실이었거나 ▶대형병원 응급실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 점 등으로 분석했다.

큰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 중 중증(KTAS 1·2등급) 환자는 8.4%에 불과했다. 중경증(KTAS 3등급)은 46.7%이었다. 일별로는 경증 환자는 추석 당일인 9월 29일에 가장 많이 몰렸다. 이때  58곳의 큰 병원 응급실을 찾은 경증 환자는 모두 1만1251명이었는데 5505명(48.9%)이 KTAS 4·5 등급의 경증 환자였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평상시 평일, 주말과 비교하면 각각 69.5%, 61.8% 급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중증도 분류실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중증도 분류실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정부는 최근 경증 환자의 응급실 쏠림 관련 대책으로 119 구급대에 병원 전 중증도 분류기준(Pre-KRAS)을 도입하고 국민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중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보건복지부·교육부와 협의해 초·중·고 교육과정에도 응급실 이용 관련 내용을 넣으려 한다”며 “복지부와 함께 특정 지역 한 군데를 정해 경증 환자가 대형 병원에 아예 못 가도록 하고 관련 비용을 병원에 보전해주는 식으로 응급의료전달체계 관련한 시범사업도 곧 시작한다. 효과를 봐서 점차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 등 학계와 정치권은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이 위탁 운영 중인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독립된 조직으로 키우자고 주장한다. 전문적이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돕고 응급의료체계를 전담할 컨트롤타워로 기능하게 해야 한단 것이다.

중앙일보·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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