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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남한산성 여행

중앙일보

입력

남한산성에서 바라보는 고려거란전쟁과 병자호란
승리한 역사 vs 패배한 역사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남한산성 여행》은 1019년 귀주대첩 시점의 고려와 1636년 병자호란 시점의 조선을 대비하여 보는 남한산성 역사 여행 에세이로,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패배의 장소인 남한산성에서 고려거란전쟁을 승리로 이끈 현종을 오버랩시키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패배한 역사와 승리한 역사의 차이를 살펴보고, 왜 리더가 중요하며, 위기의 순간 우리가 선택해야 할 해법은 무엇인지를 반추하게 만드는 책이다.

황윤 작가의 남한산성 여행은 롯데타워 근처 삼전도비에서 시작하여 남한산성의 행궁과 남문, 수어장대, 서문으로 이어진다. 여정을 통해 굴욕의 증거인 삼전도비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문헌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다. 남한산성은 이토록 패색 짙은 유적이지만 이 책은 병자호란보다 600년 전 일어난 고려 현종의 고려거란전쟁을 소환함으로써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한다.

최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연인’을 통해 남한산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여기에 KBS 50주년 특별기획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 방송도 앞두고 있어 드라마를 통한 역사 읽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이 책은 병자호란과 고려거란전쟁을 동시에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 현종과 인조를 비교 분석하는 색다른 시도와 여행이라는 형식을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역사가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초대한다.

고려 현종과 조선 인조를 함께 소개하게 된 이유
유사한 조건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결과

어느 날 역사 지도를 쭉 훑어보던 황윤 작가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1019년 귀주대첩 시점의 고려·송나라·요나라 지도와 그보다 약 600년 후인 1636년 병자호란 시점의 조선·명나라·청나라 지도가 참으로 유사하다는 것.

이를 계기로 하나하나 비교하며 살펴본 저자는 두 시대에 공통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두 시대 모두 한반도에는 한민족 왕조가, 중국 대륙에는 한인 왕조가 있었으며 북방에는 유목민이 세운 왕조가 존재했다. 이때 한민족 왕조와 한인 왕조는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채 북방 유목민이 세운 왕조를 견제했으며, 이에 대해 유목민이 세운 왕조는 중국 대륙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에 앞서 배후를 안정화하고자 우선 한반도부터 손보고자 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서 흥미를 더하는 공통점은 고려 현종과 조선의 인조 둘 다 세자 시절을 거치지 않은, 준비되지 않은 왕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렇듯 여러모로 유사한 상황 속에서 고려 현종과 조선 인조 두 임금의 판이하게 달랐던 위기 대처 향방에 주목한다. 그 결과는 단순히 귀주대첩과 병자호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후 역사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쳐, 고려는 귀주대첩 이후 약 100년 간 전성기를 구가한 반면, 조선은 인조의 삼전도 굴욕 이후 세계사의 큰 흐름에 포섭되지 못한 채 소중화 사상에 빠져 고립주의 체제에 머무렀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귀주대첩의 흔적을 직접 찾아갈 수 없다. 이에 황윤 작가는 유사한 상황 속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른 남한산성 여행을 통해 고려거란전쟁을 보여주는 일석이조의 참신한 여행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인조와 현종, 병자호란과 고려거란전쟁을 대비하여 소개하는 최초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왜 리더가 중요한가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이 책은 저자와 함께 남한산성 곳곳을 찾아 그 장소의 역사를 생생히 전함으로써 인조의 실패한 리더십이 과연 어떠한 폐해까지 이르게 했는지 꼬집는다. 이는 인조반정으로 왕권을 잡았으나 병자호란의 폐배로 조선을 굴욕으로 빠트린 리더의 후손들이 감내해야 할 트라우마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 급기야 창덕궁 후원에 대보단(大報壇)을 만들어 이미 멸망한 명나라 황제를 위한 제사까지 지냈던 왕들의 모습 속에서 조선에 깃든 소중화 의식이 얼마나 견고했으며 또 유명무실한 껍데기였는지를 파헤친다.

반면 약세였던 고려가 요나라를 상대로 큰 승리를 이끌었던 현종의 예를 통해 최악의 상황까지 예측하는 치밀한 전략, 현실에 대한 직시, 실리에 기반한 외교 정책 등 유연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리더의 자세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피력한다. 이 책은 유사했던 상황에서 발발한 병자호란과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리더가 왜 중요한지 통감하는 계기를 만든다.

흔히들 귀주대첩 하면 강감찬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남한산성 여행》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 강감찬이라는 뛰어난 장수를 알아보고 20만 대군을 의심 없이 맡긴 리더, 국익을 위해 늘 자만을 경계하고 실리 있는 외교에 힘썼던 임금 현종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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