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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여론조사 완패한 날, 돌연 "가자 교전 일시중지 고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백악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에서 '인도주의적 일시 중지(temporary humanitarian pauses)'에 대해 지역 내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엔과 아랍국가들이 요구하는 '휴전(ceasefire)'엔 동의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은 재확인했지만, 전쟁에 대한 미 정부 내 기류 변화를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31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가자지구 내 주민들에 대한 원조와 그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 인도주의적 일시 중지를 고려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이는 어디서, 언제, 얼마나 오래, 어떤 목적으로 할지에 대한 양쪽 모두의 신뢰할 만한 지지가 있어야 한다"며 "이것이 가능할지 보기 위해 하마스와 직접적인 소통 채널을 가진 지역 내 파트너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휴전에 대해선 "지금 옳은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거리를 뒀다.

미국은 당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교전 중단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인도주의적 일시 중지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는 등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31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31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 정부의 태도 변화는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자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앞서 지난 27일 유엔은 긴급총회를 통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또 민간인 피해 문제 등이 내년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점도 영향을 끼쳤단 해석이 나온다. 31일 공개된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아랍계 미국인 500명 중 ' 오늘이 대선이라면 누구를 뽑겠느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7.4%에 그쳤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란 응답은 40%에 이르렀다.

연구소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의 지지는 지난 2020년(59%)보다 42%포인트 급락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휴전에 소극적인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가 아랍계 유권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내년 재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논쟁은 연일 미국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확보를 위한 미 의회 청문회에선 방청객 20명이 민간인 피해 등을 상징하는 붉은 페인트를 손에 칠한 채 이스라엘·하마스 간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하마스와 푸틴이 승리하게 둘 수 없다"며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동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1일 열린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확보를 위한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AFP=연합뉴스

31일 열린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확보를 위한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AFP=연합뉴스

한편 이날 미 국방부는 병력 300명을 중동에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역내 억제력과 미군 보호 능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이 중동 내 다른 지역으로 확전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중동에 주둔하는 미군을 겨냥한 공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라이더 대변인은 이들 병력의 배치 지역이 이스라엘은 아니라면서도 정확한 위치는 밝히길 거부했다. 앞서 전쟁 초기 미군은 중동 지역에 병력 900명을 배치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이스라엘의 하마스 소탕 후 가자지구에 다국적군을 두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을 배치하는 방안,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을 모델로 한 평화유지군을 설립하는 방안, 유엔이 가자지구를 감독하는 방안 등을 놓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 섬멸이 전쟁의 목표이나, 가자지구를 점령할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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