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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기법 검증하려 병원 엑스레이 쓸까도 생각” 나전상자 귀환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일본에 있던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환수한 강혜승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장이 고려 나전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일본에 있던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환수한 강혜승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장이 고려 나전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지난해 7월, 일본의 한 고미술상이 고려 나전 상자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에 있는 세 점을 포함해 세계적으로도 20점이 안 되는 고려 나전이 지금껏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났다는 걸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일본에 실견하러 다녀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반드시 환수해야 합니다.”

지난 9월 고려 나전 상자의 귀환은 문화재 전문가들을 흥분케 한 일대 사건이었다. 나전칠기는 옻칠한 가구 표면에 전복·조개·소라 등 패류(貝類) 껍데기를 다듬어 장식한 공예품으로, 고려청자·불화와 함께 고려 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나전 상자 환수 전 과정에 참여한 강혜승(48)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장을 지난달 23일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일본에서 나전 상자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분위기였나.
“전문가들과 함께 상자를 2시간 넘게 봤다. 나와서 회의를 하는데 세 분이 입을 모아서 ‘반드시 사야 한다’고 하더라. ‘이런 빛을 가진 나전은 처음’이라면서다. 매도자와 함께 있을 때는 그런 말을 못 한다. 갑자기 안 팔겠다고 하거나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나중에 저희끼리 모여서 ‘표정 관리하기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렇게까지 특별한 유물인가.
“일단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유물인 데다, 보관 상태까지 매우 좋다. 전문가들이 ‘이런 영롱한 분홍빛을 내는 나전은 처음’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관을 한 건가.
“오랫동안 유물을 소장한 일본의 한 가문이 100년 이상 창고에서 보관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오랜 시간 개인 소장자의 창고에 있었기 때문에 색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존됐다.”
고려 나전 상자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나.
“백년 넘게 나전 상자를 소장한 가문이 2020년 일본 고미술상에게 팔았고, 고미술상이 3년 동안 상자를 보관하다가 재단에 연락해 매도 의사를 밝혔다.”
들여오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없었나.
“나전 상자가 정말 고려 시대 만들어진 것인지 검증하는 데 공을 들였다.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직물 무늬와 칠기 제작 기법은 엑스레이를 통해 봐야 하는데, 매도자가 비밀리에 진행하기를 원해 일본의 박물관이나 문화재 연구소 엑스레이는 쓸 수 없었다. 병원 엑스레이로 유물을 촬영할 수 있는지도 알아봤지만, 현지 의료법상 엑스레이 촬영물을 반출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플랜B로 일시대여 계약을 맺고 한국으로 들여와 조사하기로 했다.”
희귀 유물을 빌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여해서 국내로 반입한 뒤 제작 기법을 확인하고 정식 매매 계약을 체결한 첫 케이스다. 수차례 찾아가 ‘한국 정부를 믿고 빌려 달라’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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