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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만 보던 냉난방기, 이젠 틀어요”…에너지바우처가 든든한 취약 계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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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 사는 우모(50)씨는 혼자서 고교생 딸 둘을 키운다. 기초수급 대상이라 주머니가 얇지만 집이 낡아 웃풍이 들어오는 통에 겨울마다 할 수 없이 보일러를 틀었다. 그나마 여름엔 더워도 에어컨을 안 켜고 버텼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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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11월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바우처 덕에 월 16만원 넘게 나오던 난방비가 지난 겨울 12만원 안팎으로 줄었다. 올 여름 에어컨 가동도 조심스레 늘렸지만, 전기요금은 이전과 비슷한 4만원가량 청구됐다. 날이 점점 쌀쌀해지지만 다가올 겨울에 대한 걱정도 그만큼 덜었다. 우씨는 “쳐다만 보던 에어컨도 틀 수 있게 되니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덮친 기후 위기, 지난해 이후 본격화된 에너지 위기로 우씨 같은 취약계층은 ‘에너지 리스크’에 직면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로 전기·가스요금이 빠르게 오르고, 이상기후에 따른 혹서·혹한도 잦아져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저소득 가구(소득 하위 10%)의 월 평균 연료비 지출액은 2020년 5만2325원에서 지난해 6만3044원으로 2년 새 20% 넘게 치솟았다. 같은 기간 다른 소득 분위와 비교하면 가장 큰 증가율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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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인·영유아가 있는 저소득 가구는 집안 체류 시간이 길어 그렇지 않은 일반 가구보다 연료비 지출이 1.3~1.6배 많다. 이른바 ‘난방비 폭탄’ 같은 에너지발(發) 위기가 이들에게 먼저, 깊게 찾아오는 셈이다.

이 때문에 에너지바우처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취약계층에 전기·도시가스 등의 에너지 사용 비용을 바우처 형태로 보조해 복지의 틈을 메우는 제도다. 기초수급 가구이면서 세대원이 노인·영유아·장애인·중증질환자·한부모 가족 등에 해당하면 신청할 수 있다.

에너지바우처 지원 규모는 점차 늘고 있다. 30일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바우처 발급 가구는 2018년 56만6000세대에서 지난해 113만3000세대로 4년 새 곱절이 됐다. 지원 대상 요건 등이 꾸준히 완화된 영향이다.

올해 기준 하절기(7~9월) 지원액은 4만3000원, 동절기(10~4월)는 30만4000원으로 합계 34만7000원이다. 이는 2020년(11만6000원)의 3배 수준이다. 지원액 인상에 따라 지난해 바우처 수급 가구가 쓴 동·하절기 에너지 비용의 절반(51%)을 바우처 지원액이 채워준 것으로 추정된다.

지원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내년 에너지바우처 사업 예산안은 약 6856억원으로 올해 대비 135.6%(3946억원) 증액 편성됐다. 정부가 ‘긴축 기조’를 내세웠지만, 바우처 분야만큼은 크게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약계층 챙기기를 강조한 데다, 야당도 에너지 복지 확대에 긍정적인 만큼 혜택을 받는 가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부터 동절기 바우처 금액을 하절기에 당겨쓸 수 있도록 하고, 올해부턴 기초수급자 신청 시 바우처도 동시 신청할 수 있게 되는 등 제도도 개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고유가 시대 저소득층 ‘생존권’ 차원에서 바우처 지원을 더 늘리고, 신청 누락 등 사각지대도 빠르게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에너지바우처 예산을 점차 늘리는 한편, 몰라서 못 받는 사람이 생기는 일도 줄여야 한다”며 “주거 급여 등 기초수급 가구에 바우처를 자동 연계·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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