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PC방 차리라 했다”…‘명량’ 김한민 감독이 돌아본 처음

김한민 감독의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2007). 사진 MK픽처스

6번을 엎어졌다. 7번째 프로젝트가 ‘극락도 살인사건’(2007)이었다. 촬영 들어가던 해 서른일곱 살이었다. 1995년 대학 졸업(연세대 경영학과) 후 4년 뒤 독립영화 '그렇게 김순임은 강두식을 만났다'를 연출하고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던 시절, 보다 못한 아버지는 “10년 해서 안 되면 PC방 차려라”고 했다. 1761만 관객이 본 ‘명량’(2014)으로 한국영화 부동의 흥행 1위를 기록한 김한민(54) 감독이 돌아본 처음이다.

첫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 16년 만 재상영

29일 오후 서울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극락도 살인사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왼쪽부터 양경미 평론가, 김한민 감독, 배우 최주봉ㆍ성지루 씨. 사진 충무로영화제

29일 오후 6시 서울 퇴계로 CGV 명동역 씨네 라이브러리, 김한민 감독이 장편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 상영 후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충무로영화제 '마스터스 노트-김한민의 바다, 항해의 끝은 없다' 특별전이다. 16년 전 가거도에서 이 영화를 함께 찍었던 배우 최주봉(78) 씨와 성지루(55) 씨가 함께했다. 객석에서는 배우 예지원(50) 씨가 관객으로 깜짝 질문을 던지며 "당장 오디션 보겠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김한민 감독의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2007)으로 성지루(왼쪽) 씨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사진 MK픽처스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1986년, 목포 앞바다에서 토막 난 사람의 머리가 발견된다. 부검 결과 인근 섬 극락도 주민의 시신임이 밝혀지고 특별조사반이 수사를 위해 현장 탐문에 나서지만 주민 17명 모두 실종된 채 부서진 무전기와 이상한 쪽지만 나왔을 뿐이다. 이 외딴 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입은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오싹한 공포 영화’로 입소문을 탔다.

괴상한 쪽지 하나에 점차 미쳐가는 가해자이자 희생자인 학교 소사 춘배역으로 영화를 이끌어간 성지루 씨는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생애 첫 남우조연상(대한민국 영화대상)을 받았다. "배에서 촬영할 때 해파리 많은 바다에 들어가야 했는데, 백골 시신이 떠올라 모두 놀랐다. 해경에 신고하고, 노제도 지냈다"고 돌아봤다.

당시 ‘우아한 세계’(감독 한재림), ‘천년학’(감독 임권택)과 같은 기간 개봉했음에도 208만 관객이 들며 흥행에서 압도했다.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ㆍ각본상도 받았다. ‘최종병기 활’(2011)을 계기로 사극으로 방향을 튼 김 감독은 ‘명량’ ‘한산’에 이어 ‘노량’(12월 개봉)으로 이순신 시리즈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극락도 살인사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왼쪽부터 양경미 평론가, 김한민 감독, 배우 최주봉 씨. 사진 충무로영화제

영화를 보고 난 김 감독은 "개봉하던 2007년 이후 극장에서 보기는 처음"이라며 "OTT 드라마로 다시 만들면 좋겠다. 제약회사의 음모, 이장과 연구원의 거래, 춘배의 인지력 향상 등 영화 한 번으로 끝내기는 아쉬운 캐릭터가 많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첫 영화 당시 어떤 마음이었나.  

"엎어졌던 6개 프로젝트 중 하나를 2년 걸려 각색해 촬영에 들어갔다. 신인 감독이다 보니 모니터밖에 안 보였다. 전남 신안군 가거도 한 달, 이어 남해, 욕지도 거쳐서 마지막 파주 세트장 촬영 때 ‘이 영화 찍고 감독 생활 못 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마지막 차수를 찍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앤드 크레딧 '감사한 분들' 맨 처음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이라고 적었다.

"봉 감독님은 박해일을 소개해 줘서, 미야자키 감독님은 에너지와 그로테스크한 점 등 여러 면에서 영화적 멘토였다. 최근 나온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도 보러 갈 예정인데, 많은 영감을 준 그분과 만나고 싶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반전의 보건소장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은 ‘최종병기 활’에 이어 ‘한산’에서 젊은 이순신 장군 역으로 김 감독과 인연을 이어갔다.

바다 영화가 많다.  

"배 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으로 기획했지만 촬영이 어렵다 해서 섬으로 바꿨다. 덕분에 주민들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릴 수 있었다. 바다라는 공간과 소재가 나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극락도’로 시작한 것이 이순신 장군 이야기로 이어지고 올겨울 ‘노량’까지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