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행기자들 왜 이러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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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한 실제적인 성과가 없었던 것은 남북 상호간에 아직도 확고한 신뢰구축이 미흡했음에 기인한다.
최근 들어 남북당국간 고위급회담의 진행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도 바로 쌍방간의 상호신뢰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확립하고 다지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은 쌍방이 모두 인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12일 있었던 북측 기자들의 무단 취재는 신뢰구축이라는 본질을 훼손시키는 행동으로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측 기자들은 이날 우리측의 사전 양해나 안내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수감중인 임수경양의 집을 방문하고 일부 대학에 가서 학생들을 선동했으며 시내 상가를 돌아다니며 취재를 했다.
자유언론을 신봉하는 우리로서 북측 기자들의 이런 행동을 취재와 보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기본입장이다. 우리도 북한에 가서 최대한의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역시 강력히 희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불안정한 단계에 있고,상호간의 입장이 수용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남북관계를 놓고 볼 때 현재로서는 이런 행동이 신뢰구축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 단계에서는 쌍방이 다같이 예비회담에서 합의한 규칙을 엄격히 지켜야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북측 기자들의 행동이 온당치 못했다고 본다.
북측 기자들은 이 합의사항 제17항 「쌍방은 상대측 지역에 체류하는 동안 초청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른다」는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합의마저 제멋대로 깨뜨려버린다면 앞으로 어디에서 신뢰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우리측은 이에 앞서 북측 기자들이 시장이나 공단·대학 등을 취재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을 때 이를 허용할 생각임을 연락관 접촉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습취재를 감행한 것은 의도적으로 합의사항을 위반함으로써 문제를 야기하려는 저의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측이 북한에 갔을 때 우리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철저히 통제하고 그들의 안내에만 따르게 했다는 전례에 비해서도 일방적이며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측 기자들은 이날 취재에 그치지 않고 그들 체제를 선전하는 활동을 학생들을 상대로 폈다는 점이다.
그들은 시민과 대학생들에게 선전물과 김일성 배지를 배포하는가 하면 북한 대학생들에게 편지를 쓰라며 종이를 나눠주고 「통일투쟁」을 선동했으며 임수경양 구출운동을 고취했다고 한다.
이것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실을 인식하고 정확하게 기사를 쓰고 엄정하게 이를 평가한다는 언론인의 기본적인 역할과는 거리가 먼 정치활동에 속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아직도 불안정한 탐색단계에 있으며 협상도 본궤도에 서지 못한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의 구축이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순조로운 전개를 진실로 바란다면 북측 기자들은 이 신뢰를 훼손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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