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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버리고 '재미왕국'된 소니…더 놀라운 건 이제 시작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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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화려한 변신

브랜드로 본 세계

‘워크맨’의 추억만 남고 망했다던 기업, 소니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전자제품 매장에선 “무슨 소리야?” 싶겠지만, 소니는 ‘전자’를 버리면서 살아났습니다. 대박을 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 소니의 작품입니다. 소니 뮤직, 소니 픽처스. 소니그룹 매출 절반 이상이 콘텐트에서 나옵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소니는 본령(?)인 전기차에 승부수를 던집니다.

콘텐트 왕국 소니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 1980년대 소니의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PS) 5, PS인기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주인공 조엘과 엘리(왼쪽부터). [중앙포토]

콘텐트 왕국 소니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 1980년대 소니의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PS) 5, PS인기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주인공 조엘과 엘리(왼쪽부터). [중앙포토]

소니가 세계 전자시장을 제패한 1980~90년대, 소니를 최정점에 올려놓은 ‘3대장’은 워크맨·바이오노트북·트리니트론 TV였습니다. 소니 브랜드의 차별성은 ‘기술과 디자인의 연결’에 있었습니다. 타사를 압도하는 디자인과 장인정신(모노즈쿠리)에 기반한 견고한 만듦새와 탄탄한 품질이 브랜드의 매력도를 끌어올렸죠.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한 소니 스타일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도 심취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애플의 디자이너들에게 수시로 “소니라면 어떻게 만들지 생각하라”고 닦달했다고 합니다.

모노즈쿠리와 디자인 집착이 도를 넘어 자충수가 된 적도 있죠.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11월 발매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플스3)입니다. 소니·도시바·IBM 3사가 공동 개발한 최신형 반도체를 넣는 등 플스3를 ‘가정용 수퍼컴퓨터’라 부를 만한 ‘하이엔드 끝판왕’으로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너무 비싼 가격에 냉담했고, 결국 고사양은 유지한 채 가격만 내려 적자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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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가 잘나갈 땐 ‘욱일승천(旭日昇天)’ 그 자체였습니다. 1989년 미국 컬럼비아영화사를 34억 달러(약 4조5500억원)에 인수하고 2002년엔 AT&T로부터 뉴욕 매디슨가 550번지 고층빌딩을 사들여 ‘소니 아메리카’ 본사로 사용합니다. 1990년대 중반에 애플 인수도 검토했을 정도입니다. 그랬던 소니도 일본 전체가 ‘버블경제 폭발’로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기세가 꺾입니다. 2003년 4월, 불과 이틀 만에 주가가 27% 폭락하는 ‘소니 쇼크’를 맞습니다. 이후 2009~2014년 연속 적자의 늪에 빠졌고, 2012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소니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수준인 ‘BB-’로 강등했죠.

그랬던 소니가 10년 만에 부활했습니다. 더 이상 가전 브랜드가 아닌 소니 뮤직, 소니 픽처스를 앞세운 문화 콘텐트 강자로서입니다. ‘귀멸의 칼날’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같은 인기 PC게임과 드라마 등도 소니의 대표 상품입니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회장의 말처럼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볼 수 있죠.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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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가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엔(약 9조원)을 돌파한 2021년도 실적을 보면 전체 매출 중 27%가 게임·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에 음악(11%), 영화(12.2%) 등을 더하면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게임과 미디어가 차지했죠. 반면에 전기·전자&솔루션 분야의 매출 비중은 23%에 그쳤습니다. 2000년만 해도 소니 전체 매출 7조3148억 엔(약 66조원) 가운데 69%가 전자였고, 게임(9%)·음악(9%)·영화(8%)의 비중이 미미했던 것과 대비됩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해 3월 소니의 신용등급을 10년 만에 ‘A3(안정적)’로 끌어올렸다고 하니, 소니 부활이 공식 인증된 셈이죠.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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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다음 도전은 전기차입니다. 소니는 2020년 세계 최대 ICT 전시회인 CES에서 전기차 플랫폼인 비전S 프로토타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7인승 SUV형 전기차를 선보였고요, 올해엔 혼다·퀄컴과 협력한 첫 전기차 ‘아필라’를 공개했죠. 히라이 전 소니 회장은 저서 『소니 턴어라운드』에서 “자동차 세계는 지금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소니는 이 패러다임 전환의 파고 속으로 뛰어들려 한다”고 밝혔죠.

일본 전문가인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는 “소니의 추락은 후발 주자인 한국 기업에 자신의 영토를 빼앗겨서가 아니라 미래의 영역인 디지털에서 애플에 밀려나서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소니는 결국 소니만의 미래를 찾았을 때, 부활에 성공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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