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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이게 터지면 환란 몇십배" 1853조 가계빚 겨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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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부실이 한국 경제의 새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리가 크게 오르고 있는데도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는 가계부채 양과 질을 면밀히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이미 예고한 추가 규제도 조기 시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와 함께 8000억여원의 재정을 투입해 코로나19 시기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선지급된 재난지원금 환수를 최대 200만원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57만여 명의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당·정·대 고위 협의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듯 돈을 빌린다는 뜻) 대출’이라든지 ‘영끌 투자’ 행태는 정말 위험하다”면서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꼼수를 차단하고, 동시에 금리 상승 부담이 서민 자영업자의 폐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금융안전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과거 주택 가격 급등기에 대비해서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글로벌 고금리 기조하에서 이자 부담과 상환 리스크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가계부채 양과 질을 면밀히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당정이 한목소리로 강도 높은 가계부채 관리를 언급한 것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 폭이 다시 확대될 조짐을 보여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전체 가계신용(금융사에서 빌린 가계 빚의 총합)은 지난해 3분기 1871조108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후 금리 인상 여파에 올해 1분기에 가계신용이 1853조2563억원까지 줄었지만 올해 2분기(1862조7809억원)에 다시 늘었다.

이후 가계대출은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날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2조4723억원 늘었다. 이달 전체 대출액을 다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추세대로면 한 달 증가 폭으로 2021년 10월(3조4380억원) 이후 2년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5대 은행의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폭(1조5174억원)과 비교해도 62.9% 증가한 금액이다.

가계대출은 정부의 관련 규제 강화 이후 증가 폭이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변동금리 대출비중 줄인다, 스트레스 DSR 연내 도입

지난달 금융 당국은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축소하고, 부부합산 연 소득 1억원 초과 차주에게 제공하는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특례론)의 취급을 중단하는 가계부채 대책을 내놨다.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지난달 전월 대비 전체 가계대출은 2조4000억원 증가하면서 8월 증가 폭(6조1000억원)보다 크게 둔화했다. 하지만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이달 다시 큰 폭으로 늘면서,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도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가계부채가 다시 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주택시장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 지난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주 대비 10월 넷째 주 아파트 매매가는 전국(0.05%)과 서울(0.07%) 모두 각각 15주·23주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주택 가격이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에 가을 이사 철까지 겹치면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계속 이어졌다.

앞으로 대출금리 올라갈 가능성 커

여기에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에 정부가 가계대출을 더 조일 조짐을 보이자, ‘대출 막차 타자’는 일종의 정책 풍선효과도 발생했다. 실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달 26일 기준)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주택담보대출(2조2504억원)은 물론 신용대출(5307억원)까지 늘었다. 5대 은행 신용대출이 늘어난 것은 2021년 11월(3059억원) 이후 1년11개월 만에 처음이다.

가계대출 확대 조짐에 금융 당국은 이미 예고했던 추가 규제를 시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표적으로 ‘스트레스 DSR’ 도입이 꼽힌다. 스트레스 DSR이 도입되면, 변동금리 대출상품의 DSR을 산정할 때 향후 금리 상승을 예상한 가산금리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소득 5000만원 회사원이 변동금리 연 4.5%(50년 만기)로 대출할 경우, DSR 40%를 적용하면 최대 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향후 금리 상승을 예상해 가산금리 1%포인트를 적용, 5.5%로 DSR을 산정하면 3억4000만원으로 대출 한도가 제한된다.

현재 소득뿐 아니라 미래에 줄어들 소득까지 고려해 대출 만기를 설정하도록 제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은퇴 후 연금소득까지 고려해, 대출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으면 만기가 줄어든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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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 등 현재 DSR 규제 예외를 적용하고 있는 항목들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사실상 대출 규제 우회 수단으로 이용되는 전세자금을 DSR 규제 내로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정부에서 시행했던 대출총량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다시 검토될 수 있다.

대출금리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오르고 있는 데다, 은행권의 수신 경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이미 오르고 있어서다.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기 위해 가산금리 인상을 용인하고 있는 점도 금리 상승을 부추긴다. 실제 27일 기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36~6.76%다. 한 달 전인 9월 22일과 비교해 하단이 0.46%포인트 올랐다.

전문가는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막기 위해선 일관적 정책 신호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줄어들던 가계대출은 정부가 부동산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전매 제한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고,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과 특례론 등에 DSR 예외를 허용하면서 다시 늘기 시작했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꼽았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정부가 특례론을 통해 처음 도입한 상품이었다.

여기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생금융을 외치며 시중은행에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도 정책 혼선을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의 한 금융통화위원은 “창구지도 등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정책이 통화정책 기조와 괴리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만큼 돈을 빌려준다는 기본 원칙의 예외를 정부가 만들면서 가계부채 증가를 용인한 측면이 있다”면서 “한국은행도 가계부채가 계속 늘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했다.

자영업 57만명 환수금 면제 혜택

한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선지급된 재난지원금 환수를 최대 200만원까지 면제하기로 한 것은 ▶매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 확산을 긴급히 막으려 지원이 결정돼 소상공인 등에게 귀책사유가 없고 ▶현재 고금리로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환수 면제를 통해 경영 부담을 완화해 줘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27일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9월 23일~2021년 12월 31일 사이 지원 요건을 확인하지 못하고 간이과세자 등에게 우선 지원한 1·2차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환수를 면제할 근거가 되는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에 협조를 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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