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알려진 뮤지컬만 만들어서야…” 1세대 제작자 박명성 쓴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최근 전남 일대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총연출을 맡아 현장을 지휘 중인 모습.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최근 전남 일대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총연출을 맡아 현장을 지휘 중인 모습.

“요즘은 한 배역에 네다섯 명까지 캐스팅해요. 문제가 있죠. 여러 배우가 나눠 하다 보면, 각각의 연습량이 줄어 작품성이 저하될 수 있거든요.”

1세대 뮤지컬 프로듀서 박명성(60) 신시컴퍼니 대표의 우려다.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만난 그는 기록 행진 중인 한국 뮤지컬계에 “스타 위주보단 작품 본연에 충실한 작품으로 관객에게 접근해야 한다. 조심스러운 시기”라고 직언했다.

올해 국내 뮤지컬 시장은 사상 최초 연간 티켓 판매액 5000억원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 기간 억눌린 관람 욕구가 폭발하며 오히려 팬데믹 전보다 팽창했다.

2019년 뮤 지컬 ‘맘마미아!’를 공연 중인 배우들. 신시컴퍼니의 효자 상품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2019년 뮤 지컬 ‘맘마미아!’를 공연 중인 배우들. 신시컴퍼니의 효자 상품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뮤지컬도 올 3월 ‘영웅’, 9월 ‘레베카’가 합세하며 총 열 편이 됐다. ‘명성황후’(2007년), ‘캣츠’(2009년), ‘맘마미아!’(2010년), ‘오페라의 유령’(2013년), ‘지킬 앤 하이드’(2014년), ‘노트르담 드 파리’(2016년), ‘시카고’(2018년), ‘아이다’(2022년) 등 2~3년에 한편꼴에서 올해 처음 한해 두 편이 탄생했다.

신시컴퍼니는 관객 200만을 넘어선 ‘맘마미아!’와 ‘시카고’에 이어 지난해 ‘아이다’가 초연 17년 만에 100만을 기록하며 세 편의 밀리언셀러를 보유하게 됐다. 박 대표는 “연간 뮤지컬 공연 작품 수로 런던·뉴욕 다음이 서울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전 세계가 놀랄 만큼 급성장·팽창했다”면서도 “올여름부터 위험 신호가 보인다”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뮤지컬이 마니아 위주에서 대중으로 관람 저변이 확대되면서 경기를 타는 것 같다”면서 “인지도 있고 검증된 작품만 살아남고 초연은 선택받기 힘든” 양극화를 지적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대관료가 급등하면서 전석이 매진돼도 적자를 간신히 면하는 작품도 생겨났다고 한다.

지난 5월 내한한 뮤컬 ‘시카고’ 팀. [연합뉴스]

지난 5월 내한한 뮤컬 ‘시카고’ 팀. [연합뉴스]

올해 신시 뮤지컬도 ‘마틸다’ ‘맘마미아!’ ‘시카고’ 등 유명 뮤지컬들은 캐시카우 노릇을 했지만, K걸그룹의 시초를 되짚은 쇼 뮤지컬 ‘시스터즈’ 초연은 흥행이 부진했다. 박 대표는 “박칼린 감독과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건데 초연이라 인지도가 없었다”면서 “그래도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연극도 지속해서 해야죠. 그래도 저희는 ‘대박 콘텐트’들을 갖고 있거든요.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이런 작품들에서 수익을 내서 창작 뮤지컬에 도전하는 거죠.”

그는 전남 해남 농가의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 차범석 연극 ‘산불’(1979)에 사로잡혀 무대 위 삶에 뛰어들었다. 1982년 극단 신시에서 배우로 출발해 조연출·기획으로 발을 넓혔다. 1998년 뮤지컬 본고장 뉴욕·런던에 연수를 다녀오며 체계적인 브로드웨이식 제작 시스템을 접한 걸 계기로 99년 극단 신시를 신시뮤지컬컴퍼니(2009년 신시컴퍼니로 변경)로 전환, 이듬해 대표까지 맡게 됐다.

박 대표는 “그전만 해도 주먹구구식이 많았다. ‘아가씨와 건달들’ ‘넌센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같은 작품을 라이선스 없이 무단 공연했다. 다른 배우가 녹음한 노래를 그냥 사용하기도 한, 우스운 시대였다”고 돌이켰다.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오리지널 무대장치 등을 공수하면서 한국 관객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1998년 그는 첫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 ‘더 라이프’를 가져왔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200석을 매진시키며 자신감을 얻어 브로드웨이에서 도발적인 신작으로 주목받던 뮤지컬 ‘렌트’를 2000년 국내 초연했다. 동성애, 에이즈, 마약중독, 거리의 부랑아 등 당시 한국에선 금기시된 소재지만 “젊은이들의 사랑,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관객과 통하며 효자상품이 됐다. 다음 달 11일 서울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9번째 시즌이 개막한다.

신시는 ‘햄릿’ 뮤지컬판, 화가 장승업을 그린 영화 ‘취화선’의 연극 작품도 준비 중이다. 내년엔 차범석 탄생 100주년 기념 연극 ‘산불’도 공연한다. 배삼식 각색, 손진책 연출로 박 대표가 프로듀서를 맡는다.

박 대표는 지역 공연문화 융성도 과제로 꼽았다. 고향 전남에서 이달 중순 열렸던 전국체전 개·폐회식 연출을 맡아 남도 소리꾼과 K팝 무대, 드론 쇼가 어우러진 무대를 만든 배경이다. 그는 “수도권과 지역 문화 예술에 대한 격차가 너무 크지않냐”며 “씻김굿을 현대적 뮤지컬로 해보는 식의 지역 전통문화 활성화·현대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