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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삽관 받다 숨진 영아' 대법은 병원 손 들어줬다,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뉴스1]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뉴스1]

6년 전 급성 세기관지염으로 입원치료를 받던 신생아가 숨진 사건에 대해, 고등법원이 ‘기도삽관을 잘못 한 의료진 책임이 60%’라 봤지만 대법원이 ‘인과관계 증명이 제대로 안 됐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지난 2016년 1월, 생후 32일된 아기가 기침증세로 조선대학교병원 응급실에 왔다. 의료진은 ‘급성 세기관지염’이라 했다. 기도 안지름이 작은 영아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주로 바이러스로 인해 기도가 붓고 염증반응으로 분비물이 쌓이는 호흡기 질환이다.

다음날 호흡곤란으로 또 응급실에 온 아기는 온몸이 파랗고 맥박이 잘 짚이지 않았다. 의료진이 심장마사지와 기관삽관을 했다. 소아청소년집중치료실에서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던 아기는 나흘 째 밤엔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병동 간호사가 기관흡인을 했는데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 이후 의료진이 앰부배깅(ambubagging·앰부백을 사용하여 산소공급을 하는 행위), 기관 내 삽관, 심폐소생술을 하다 기흉이 발견돼 기흉천자를 했으나 아기는 끝내 숨졌다.

아기를 낳은 지 37일만에 장례를 치러야 했던 부모는 그 해 11월 병원(학교법인 조선대학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이들은 간호사가 기관 내 삽관 튜브를 빠지게 해 아기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봤다. 튜브를 잘못 건드려 식도에 들어가 산소공급이 중단됐고 결국 저산소증에 의한 심정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광주고등법원. [뉴스1]

광주고등법원. [뉴스1]

1심에선 의료과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은 간호사의 과실로 아기가 사망했다며 병원의 책임을 60%로 봤다. 판결문엔 5년차 간호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담당의사의 말이 여러 번 인용됐다. “긴급호출을 받아 가 보니, 아기 복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기도 내 삽관된 튜브가 간호사의 앰부배깅 전에 이미 빠져있었는데 간호사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앰부배깅을 해 공기가 식도로 들어가 그렇게 된 것 같다” “그 날 오전에 일부 간호사 대상 폐쇄형 흡인기 사용법을 교육했는데, 그 간호사는 저녁근무라 참석하지 못했다. 폐쇄형 흡인기를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그 간호사의 과실로 아기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광주고법 민사3부(부장 김태현)는 조선대학교에게 유족들에게 2억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2021년 1월).

하지만 이 판결은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깨졌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간호사에게만 아기 죽음의 책임을 돌리는 건 무리라고 보고, 심리부터 다시 하라며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병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려면 기관흡인 때 튜브가 빠졌다는 사정이 증명돼야 하고, 튜브 발관이 간호사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것이 인정돼야 하며, 발관과 산소포화도 저하 사이 인과관계, 튜브를 빨리 재삽관하지 않아 상태가 악화됐다는 점, 이런 과정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증명돼야 한다”면서 “광주고법은 이런 부분이 증명됐는지 심리·판단 없이 의료진 과실로 단정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다시, 다른 가능성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언론에 실린 신생아에게 기도 삽관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EMERGENCT LIVE]

해외 언론에 실린 신생아에게 기도 삽관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EMERGENCT LIVE]

대법원은 “기관흡인 후 촬영된 방사선 영상을 보면 아기 위 속에 공기가 있긴 하지만, 앰부배깅을 하면서 공기가 유입됐을 가능성도 있어 빠진 튜브가 식도에 들어갔다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면서 “담당의사가 병실에 가 보니 아기 복부가 부풀어 있었다고 한 때는 기관흡인으로부터 30분이 지나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튜브가 빠진 것이 산소포화도 저하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폐 상태 악화 등에 따른 기흉이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간호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형사 재판도 받고 있는데 1심에선 무죄가 나왔고 2심이 진행중이다.

판결문엔 작은 아기에게 기도삽관을 하는 게 얼마나 곤란한 작업인지가 적혔다. 성인이라면 커프(cuff)라는 튜브 자체 고정장치를 통해 튜브를 기도 내에 고정하고 입 주변에도 고정하는데, 영아는 튜브 자체에 고정장치가 없어 입 주변에만 부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법원은 “튜브 또한 매우 얇고 가늘어 영아의 침 등으로 고정이 헐거워지거나 작은 움직임으로도 튜브가 움직일 수 있고” “영아는 기도 길이가 매우 짧아 기관 내 삽관을 할때 의료진이 주의의무를 다해도 정확히 길이를 맞춰 삽관하기 어려워” 의료진의 주의의무를 다해도 완벽함에 이르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11월 시작된 이 사건은 광주지법에서 2년 10개월, 광주고법에서 1년 3개월, 대법원 소부에서 2년 8개월 머물렀다. 지난 24일 사건을 돌려받은 광주고법은 다른 재판부에 배당해 네 번째 재판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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